서울 서대문구의 한 초등학교 인근에서 아동을 유괴하려 시도한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 2명이 구속을 면했다.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선 경찰이 미흡한 초기 수사로 범인을 뒤늦게 검거한 뒤 무리하게 구속을 시도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서부지법 김형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5일 오후 미성년자 약취·유인 미수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 2명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김 판사는 “피의자의 혐의사실, 고의 등에 다툼의 여지가 있어 방어권을 일정 정도 보장할 필요성이 있다”며 “피의자의 주거가 일정하고 대부분의 증거가 수집되어 있어 증거 인멸이나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이들은 지난달 28일 오후 3시30분쯤부터 세 차례에 걸쳐 홍은동의 한 초등학교 인근과 근처 공영주차장 주변에서 초등학생들을 유괴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초등학생에게 접근해 “귀엽다,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말하는 등 5분 동안 3차례에 걸쳐 범행을 이어갔다.
경찰은 앞서 ‘차량에 탄 남성들이 초등학생 유괴를 시도했다’는 내용의 두 차례 신고를 받고 수사에 나서 피의자 3명을 긴급체포한 뒤, 이 가운데 이들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피의자 2명은 대학생, 1명은 자영업자로 알려졌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전날 술을 마신 뒤 만나 짬뽕을 먹고 귀가하다 초등학생들이 귀엽게 생겨 장난삼아 던진 말인데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고 재밌어서 범행을 저질렀다. 실제 차량에 태울 의도는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즉석에서 계획한 장난일 뿐이라는 취지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학생은 4명으로, 모두 초등학교 저학년 남학생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이날 “피의자들 진술이 모두 같았지만 사전 모의 가능성 등을 배제하지 않고 수사 중”이라며 “차량과 휴대전화 3대를 압수수색했고, 현재 포렌식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을 붙잡는 과정에서 경찰 수사가 안이했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경찰은 지난달 30일 접수된 최초 신고와 관련해 수사를 벌인 뒤 언론에 “범죄 관련성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학교 측 ‘유괴 주의’ 가정통신문이 보도되고, 사건 당일 또 다른 유괴 미수 사건이 있었다는 신고가 접수되며 재수사에 나섰고, 결국 폐쇄회로(CC)TV를 다시 확인한 끝에 용의자 3명을 긴급체포했다.

공개된 현장 영상에는 회색 소렌토 차량이 4초가량 멈춰서자 초등학생이 도망치는 모습이 담겼다. 남성 3명은 초등학교 정문으로부터 100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차에 탄 채로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이들은 약 1km를 이동해 4분 만에 다시 아이들을 유인했는데, 길을 걷던 초등학생 2명은 남성들의 목소리에 놀라 차와 반대 방향으로 도망쳤다. 나머지 학생들은 무심하게 지나쳤다.
경찰은 앞서 이날 오전 별도의 브리핑을 열고 1차 신고 당시 접수된 범행 차량의 색상과 차종이 실제와 달라 수사에 혼선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첫 신고 당시 신고된 범행 차량은 흰색 스타렉스였으나, 실제 범행 차량은 회색 소렌토였다. 또 “피의자들이 ‘장난이었다’고 진술했지만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 불안감이 조성됐기 때문에 초기에 강경 대응을 하는 게 맞는다”며 가담 정도가 큰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구속영장 기각 사유를 분석한 뒤 재신청 여부 등을 검토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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