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관세 협상 후속 협의를 위해 미국을 방문했던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어제 ‘빈손’ 귀국했다. 김 장관은 12일(현지시간) 미 뉴욕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3500억달러(486조원) 규모에 달하는 대미 투자의 구체적인 이행 방안 등을 논의했다. 김 장관은 입국장에서 협상 성과 등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대미 투자 방식이나 이익 배분 방식 등의 세부 사안에서 미국이 과한 요구를 하며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의 요구 내용은 비상식적이다. 한·미는 지난 7월 말 관세 협상에서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기로 한 25%의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총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진행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번 협의에서 미국은 일본과의 합의 내용에 준해 한국 외화보유액(4100억달러)의 84%에 달하는 거액을 트럼프 행정부 임기인 3년 안에 모두 투자하라고 했다. 투자 수익 배분도 원금을 회수할 때까지는 5대 5로 나누다 이후 전체 수익의 90%를 미국이 갖겠다고 요구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미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딘 베이커 박사가 “한국과 일본이 합의를 수용하는 건 어리석다”며 “대미 수출 감소로 피해를 보는 기업을 지원하는 게 더 이익”이라고 했겠는가.
미국이 무역 흑자 규모를 근거로 내세우지만, 우리와 일본은 처지가 다르다. 일본은 우리보다 외환보유액이 3배나 많다. 외부 변수에 따른 충격 강도가 우리보다 훨씬 약하다. 게다가 일본은 미국과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맺은 준기축통화국인 만큼 마음만 먹으면 엔화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하물며 그런 일본조차 자국 내에서 미·일 관세 협상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상대방에게 일방적인 피해를 강요하는 건 협상이 아닌 겁박이다. 일본과 달리 우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임에도 일방적으로 15%의 관세를 떠안았다. 미 사법부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에 대한 위법성 여부를 심리하고 있는 것도 예의 주시해야 한다. ‘조지아 사태’에서 보듯 돈만 보내고 사람은 보내지 말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관세 협상의 최우선 가치는 국익을 지키고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대미 투자 대부분을 대출이나 보증 한도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단호하게 견지해야 한다. 정부·민간의 역량을 총동원해 해법을 찾는 게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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