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경찰 거치는 사건 300만건 넘어
행안부 소속 중수청 ‘9대 중대범죄’ 전담
공수처·국수본과 수사 범위 겹칠 우려
“권한이 집중되면 부패·남용할 가능성
자치경찰제 전면 시행 경찰력 쪼개야
감독 기구 경찰위 권한도 대폭 강화를”

“경찰은 믿을 만하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검찰개혁 논쟁을 언급하면서 한 얘기다. 이 대통령은 여권 내에서 이견이 표출된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문제에 대해 거론하면서도 “그걸 다 경찰에 갖다놓으면 어떻게 되냐”고 했다. 검찰개혁을 둘러싼 이견을 인용하면서 나온 발언이긴 했지만 ‘대통령의 입’에서 직접 ‘경찰권 비대화’에 대한 우려가 흘러나온 만큼 경찰 내 파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불과 열흘 전 박성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이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검찰개혁은 수사·기소 분리가 핵심이다. 경찰 비대화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경찰권 비대화 우려에 불분명한 측면도 있단 취지”라며 “대통령께서 직접 언급한 만큼 필요한 경우에 설명하고 대책 또한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재명정부가 검찰청 폐지와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신설을 골자로 한 정부 조직 개편안을 확정하면서 경찰권 비대화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본격 점화하는 모양새다. 당장 내년 9월까지 1년 유예기간 중 국무총리실 산하 범정부 검찰개혁 추진단이 각 기관 수사범위, 검찰 보완수사권 존폐 등 세부방안을 도출할 예정인 가운데 경찰권 비대화 우려가 이 논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경찰 수사’에 대한 논의뿐 아니라 국가경찰위원회 실질화·이원화, 자치경찰제 확대 등 ‘경찰 조직’에 대한 민주적 통제 추진에도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경찰 ‘손’ 거치는 사건, 한 해 300만건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손’을 거치는 사건은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 지난해 300만건을 넘어선 상황이다. 16일 경찰청에 따르면 2021년 220만7491건에서 2022년 242만2419건, 2023년 260만5507건으로 매해 20만건 안팎 수준으로 늘다가 지난해의 경우 50만건 가까이 증가해 무려 308만2457건이 접수됐다. 이는 2023년 수사준칙 개정으로 경찰 고소·고발 반려 제도가 폐지되면서 고소·고발이 이뤄지는 모든 사건을 접수하게 된 데 따른 영향이다.
이런 가운데 중수청이 행정안전부 소속으로 결정되면서 경찰권 비대화 우려에 불을 지피고 있다. 김예원 변호사(장애인권법센터 대표)는 “(중수청은) 결국 1차 수사기관을 하나 더 만들겠다는 것인데, 행안부 소속으로 가면서 기존 경찰 인력이 중수청에 흡수될 확률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이는 결국 경찰 측이 1차 수사기관 중 하나인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뿐 아니라 중수청까지 주도할 것이란 전망으로 이어진다.

중수청은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기존 검찰이 보유해 온 6대 중대범죄에 대한 직접 수사권을 넘겨받게 될 기관이다. 여기에 내란·외환·마약범죄를 더해 9대 중대범죄 수사를 전담하게 된다. 법조계 안팎에선 공수처·중수청·경찰 국수본 간 수사범위가 겹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예컨대 경제 범죄의 경우 국수본 내 금융범죄수사과가 담당하고 있어, 중수청과의 업무 중첩 가능성이 대두된다.
정부는 국무총리 소속으로 설치할 국가수사위원회를 통해 각 기관 간 수사를 조정하고 경찰 국수본 등 개개 기관을 감독한다는 구상이다. 범정부 검찰개혁 추진단에서 그 존폐를 논의할 검찰 보완수사권 또한 경찰 수사권을 통제할 수 있는 ‘카드’로 검토할 예정이다.

◆“자지경찰제 확대로 경찰 권한 쪼개야”
그러나 이런 수사권 논의의 틀만으로는 경찰권 비대화 우려를 불식하기 어렵다는 게 대개 전문가 평가다.
경찰 조직 내 수사·정보뿐 아니라 범죄예방·생활안전·교통·경비·여성청소년 등 기능이 집중된 상황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거론되는 게 자치경찰제 전면 시행이다.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당시 경찰권을 분할하기 위해 자치경찰제가 도입됐지만 여전히 미완의 상태다. 국가·자치경찰로 ‘사무’만 나눴을 뿐 여전히 ‘한 지붕’ 아래 있기 때문이다.
김상운 대구가톨릭대 교수(경찰행정학과)는 “경찰권이 비대하다는 평가는 경찰이 너무 많은 권한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권한이 집중되면 부패하거나 그 권한을 남용할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라며 “국가·자치경찰을 완전히 쪼개 이원화해야 한다. 교통·범죄예방·지역경찰 등 사무·권한을 지자체에 넘겨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경찰력의 한 3분의 1이 떨어져 나가는 셈”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날 국무회의에서 확정한 국정과제에 범죄예방·여성청소년·교통 등 자치경찰 사무 이관을 골자로 한 이원화 자치경찰제 단계적 확대가 담겼다.
여기에 더해 경찰의 민주적 통제 강화 차원에서 국가경찰위원회 실질화도 과제로 담아놨다. 위원회 산하 사무기구 운영, 심의·의결 사항에 대한 경찰청 조치 보고 의무화 등이 골자다. 현재도 국가경찰위원회가 운영되고 있지만 사실상 경찰을 통제하는 데 역부족이란 게 일반적 평가다.
염건웅 유원대 교수(경찰소방행정학부)는 “경찰을 직접적으로 상시 감독할 수 있는 기구는 결국 국가경찰위원회밖에 없다”며 “지금은 ‘회의만 하고 끝’ 이런 식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행안부에 경찰국을 만들면서 더욱 무력화했다. 국가경찰위원회 위상을 원상복구하는 차원에서 권한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