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특성상 고정비용 커 점유율 사활
2분기 현대차·기아 영업익 1조원대 감소
발표 한달 늦어지면 2100억씩 추가 손실
실적 악화는 미래 경쟁력과 직결돼 우려
업계 사양 업그레이드로 가격 인상 검토
“지금까지는 미국 시장의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관세 부담을 고스란히 기업이 떠안았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미국 시장에서 일본 자동차에 대한 관세가 15%로 인하된 16일, 업계 관계자는 경쟁 업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관세 부담은 당장의 수익뿐 아니라 미래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지난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전쟁’을 시작한 이후 한·일 자동차 기업들은 동병상련의 처지에 내몰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관세가 ‘제로’였던 한국은 25%로 치솟았고, 2.5%의 관세를 부담했던 일본은 27.5%로 관세율이 수직상승했다.
하지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만족도)와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가 강점인 한·일 자동차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 유지를 위해 관세 인상에 따른 손실을 떠안은 채 버티기에 돌입했다. 메르세데스벤츠·BMW, 아우디 등 독일 고가 차량이 물가 상승 기류를 타고 일부 차종의 판매액을 올린 것과 대조적이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한·일 양국 기업 모두 속이 썩어들어가는 상황이었다”며 “하지만 오늘부터 (주요 경쟁자인) 일본 기업들의 관세 부담액이 상대적으로 줄게 돼 국내 기업들의 우려가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지난 5개월간 우리 자동차 업체들은 시장점유율 사수를 위해 실적 악화를 떠안는 선택을 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수익 감소보다 더 무서운 것은 판매가 줄어드는 것이다. 제조업의 특성상 인건비, 물류비, 운영비 등 고정비용이 커서 판매 감소에 따른 충격이 더 크다”며 “손실을 떠안고도 비용을 소비자에게 대체로 전가하지 않은 이유”라고 말했다. 현대차·기아만 해도 지난 2분기부터 지금까지 영업 감소액이 1조원이 넘는 등 완성차 업계에 부품을 대는 업체들까지 감안하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전망이다.
업계에선 관세 인하 발표가 한 달 늦어질 때마다 약 2100억원의 추가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현대차·기아의 경우 2분기에 미국 내 재고 물량을 활용한 점에서 하반기부터 충격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부품업계 사정도 다르지 않다. 한국산 부품 관세를 더하면 부담액은 더 늘어나게 된다. 미 도로교통안전국(NHTSA)에 따르면 2025년형 쏘나타 하이브리드 주요 부품의 90%가 한국산이었다. 부품업체 관계자는 “상반기까지는 지난해 말부터 재고를 미리 확보하는 방식으로 대응이 가능한 상태였지만,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으로 관세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 심각한 건 실적 악화가 기업의 미래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자동차 시장에도 인공지능(AI) 같은 최첨단 기술이 도입되면서 미래차 시장 선점을 둘러싼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업체 관계자는 “수익이 많을수록 투자 여력이 늘고,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한 홍보 비용도 여유롭게 쓸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런 비용을 다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며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이 길어질수록 향후 시장점유율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수출이 한국 경제의 기둥 중 하나인 점에서 관세 충격이 계속될 경우 산업을 넘어 국가 성장동력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지난해 자동차산업 수출의 생산유발액은 2365억 달러(약 328조원)로 3년 연속 주요 품목 1위를 기록했고, 연관 산업의 고용과 투자 효과가 큰 산업으로 꼽힌다. 자동차산업의 직간접 고용 인력은 약 150만명 수준이며 철강이나 반도체보다 많다.
그러나 이날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8월 자동차산업 동향’에 따르면 미국이 수입차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한 것에 대한 영향으로 8월 대미 자동차 수출이 15.2%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3월 이후 6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 같은 변화에는 수출 구조를 다변화하려는 노력이 일부 반영됐지만, 대미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그만큼 우리 기업의 경쟁력과 수익이 감소했음을 의미한다.
업계에선 점진적인 비용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제품을 어느 날 갑자기 비싸게 판매하는 게 아니라, 같은 모델의 사양을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으로 가치 인상을 유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선 관세 협상이 타결되거나 미국의 상황이 바뀌는 걸 기다리고 있다”며 “그러나 아무리 비용 절감 등의 노력을 계속해도 이대로 마냥 버틸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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