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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운하의 나라’ 넘어 ‘한국의 친구’로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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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0-01 17:42:46 수정 : 2025-10-02 15:00:14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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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 가운데 파나마 운하를 모르는 이는 없어도 한국이 세계에서 네 번째로 파나마 운하를 많이 이용하는 국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파나마(Panama)라는 국명은 ‘많다’, ‘풍부하다’ 등의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한반도의 3분의 1 정도인 75만517㎢의 비교적 좁은 국토 면적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어류 및 수목 자원을 바탕으로 연평균 6%가량의 경제 성장률을 꾸준히 기록하며 중남미 지역에서 눈에 띄는 지속적 발전을 구가하고 있다.

1962년 외교 관계를 수립한 한국와 파나마가 올해로 수교 63주년을 맞았다. 사진은 양국 고위급 대표자들의 회담장 테이블 위에 파나마 국기(왼쪽)와 한국 태극기가 나란히 놓인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파나마와 한국의 수교는 19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장군이 이끄는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일종 과도 정부 노릇을 하던 시절이다. 국제사회에서 서로 정통성을 인정받으려는 한국과 북한이 치열한 체제 경쟁을 펼치던 시기이기도 하다. 1960년대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북한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지 않고 일관되게 한국을 지지해 온 파나마는 우리 입장에선 퍽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2010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방문 이후 파나마를 찾은 한국 국가원수가 없다는 점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우리가 파나마에 감사해야 할 이유가 또 있다. 1950년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파나마가 인도적 차원에서 한국에 구호 물자를 지원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직접 전투에 참여한 파나마 출신 병사도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03년 독립 이래 수십년 동안 미국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파나마의 젊은이들이 미군에 입대해 그 일원으로 한반도에서 싸운 것이다. 참전용사의 정확한 숫자나 피해 규모 등은 앞으로 밝혀져야 할 대목이라고 하겠다.

9월30일(현지시간) 파나마 수도 파나마시티에서 ‘우정과 협력의 다리를 잇다: 파나마와 한국’ 전시회 개막식이 열려 주요 참석자들이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왼쪽 두 번째부터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 디노스카 몬탈보 파나마 내무부 장관, 하비에르 마르티네스 외교부 장관, 한병진 주(駐)파나마 대사. 전쟁기념사업회 제공

지난 9월30일(현지시간) 파나마 수도 파나마시티에서 ‘우정과 협력의 다리를 잇다: 파나마와 한국’이란 제목의 전시회 개막식이 열렸다. 우리 전쟁기념사업회와 파나마 외교부가 공동으로 기획한 이번 행사는 지리적 거리 때문인지 다소 멀게 느껴진 양국 관계의 재조명이 목적이다. 6·25 전쟁 당시 파나마의 물자 지원과 다수 병사들이 미군 소속으로 참전한 역사적 사실을 비롯해 1962년 수교 이후 정치·경제·문화 분야 협력의 발자취도 소개한다. “양국이 쌓아온 우정과 협력을 돌아보고, 앞으로 더 굳건한 동반자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는 백승주 사업회장의 바람이 꼭 결실을 맺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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