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거래소 연동 계좌 1000만∼2000만원+α…'운 나빠' 사고 나면 폭행·고문
고수익 내건 모집책이 "취업사기 당했다" 대본 주기도…피해자 겸 가해자도
캄보디아 범죄단지로 향하는 한국인 상당수가 범죄자금 세탁에 쓰일 대포통장을 판매하려는 청년들이라는 관련자들의 증언이 나왔다.
현지에서 자금을 세탁하는 과정에서 돈이 어딘가로 빠져나가거나 너무 빨리 지급정지가 되는 이른바 '돈 사고'가 나면 감금돼 폭행·고문을 당하고 결국 참극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15일 연합뉴스가 캄보디아 범죄단지에서 일한 경험이 있거나 단지 사정을 잘 아는 복수의 관계자를 취재한 결과 범죄단지는 이른바 '장집'(대포통장 모집책)을 통해 자금 세탁을 위한 '장'(통장)을 모집하고 있다.
한국인 대상 보이스피싱·로맨스 스캠 등으로 얻은 범죄 자금을 세탁하기 위해서인데, 한 통장을 오래 사용할 수 없는 돈세탁 범죄의 특성상 많은 통장이 필요하다. 상호 신뢰가 없는 만큼, 장집이 모집한 계좌 명의자가 직접 캄보디아로 간 뒤 범죄단지로 들어가 자금 세탁 과정까지 함께 있는 식이다.
본인 명의 통장으로 범죄자금을 세탁하고 무사히 빠져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에서 돈을 가로채는, 이른바 '누르는' 사고가 일어나면 비극이 시작된다는 게 관련자들의 설명이다.
범죄단지 근무자의 지인 A씨는 연합뉴스에 "통장을 팔러 가면 한국에 있던 장집이 보고 있다가 돈이 쌓였을 때 채가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현지에서 통장 명의자에게 '네 통장이니 네가 책임져'라며 협박이 시작된다"고 했다.
이 경우 가족, 지인들에게 연락해 돈을 받아오게 하거나 보이스피싱, 로맨스 스캠 등 범죄에서 텔레마케팅(TM), 채팅 업무를 시켜 범죄 수익으로 빠져나간 돈을 메꾸게 한다는 설명이다.
지난 8월 캄보디아 깜폿주 보코산의 범죄단지에 갇혀 고문받다가 숨진 채 발견된 경북 예천 출신 대학생 박모(22)씨도 이와 같은 이유로 폭행을 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대포통장으로 이용됐던 박씨 명의 통장에 있던 자금 수천만 원이 국내 대포통장 범죄 조직, 즉 장집에 의해 인출된 것으로 본다. '누르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이런 위험에도 한국인들이 통장을 들고 캄보디아로 향하는 이유는 짧은 시간 고수익이 약속되기 때문이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와 연동된 은행 계좌는 한도에 따라 가격이 다르지만 통상 1천만∼2천만원에 거래된다. 명의자에게 세탁 자금의 1∼3%를 떼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범죄에 발을 들여놓는 상황에 노출된다.
A씨는 "(장집 기준으로) 주식 리딩방, 로맨스 스캠, 비상장 주식 범죄자금은 세탁해 주면 20∼25%가 떨어진다. 보이스피싱은 통장이 빨리 잠겨 돈세탁이 힘드니 50∼60%까지 주는 곳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대포통장 모집책 B씨는 연합뉴스에 "통장 팔러 오는 사람들은 당장 돈 1천만∼2천만원이 없으면 살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든 사람들"이라며 "사업에 실패하거나 부모님·자녀 수술비가 필요한 사람, 사채를 상환해야 하는 사람 등 다양하다"고 했다.
고수익에 혹해서 캄보디아로 떠날 사람을 모집하기 위해 장집들은 각종 조건을 내세운다. '호캉스'를 간다고 생각하라면서 공항에서부터 호텔까지 최고급 서비스를 제공하고 유흥비까지 지원한다고 꼬드긴다는 것이다.
통장 명의자는 단기간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떠나지만, 실제로는 계좌를 '누르는' 사고가 종종 발생해 범죄단지에 갇히는 경우가 많다고도 했다.
범죄단지에 감금됐던 C씨도 작년 9월 통장을 팔기 위해 캄보디아로 향했으나 1억원대 범죄자금이 입금됐을 때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 고문과 폭행을 당했다.

그는 빠져나간 범죄 수익금을 메꾸기 위해 단지에 갇힌 채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에 동원되다가 지난 8월 캄보디아 현지 경찰의 단속으로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캄보디아 범죄단지에서 구조된 이들 중 일부가 자발적으로 통장을 판매한 뒤 처벌을 피하기 위해 '대본'을 이용하는 사람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A씨는 "한국 돌아가서 조사받기가 무서우니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다 찢고 한국 대사관으로 달려가 '살려달라', '취업 사기를 당했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한국 가서 경찰에게 할 말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업체들이 통장 판매자에게 대본을 짜준 지가 오래됐다. 돈은 돈대로 벌고 싶고 한국에서 피해는 보기 싫은 사람들이 그걸 이용한다. 취업 사기라고 할 수 있도록 대화 내용을 포토샵 해주는 업체도 있다고 들었다"라고 말했다.
캄보디아에서 사업을 하는 D씨도 "캄보디아에 온 사람 상당수가 알고 왔다고 생각한다. 불법인 줄 모르고 들어왔다고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나라다. 한국에 돌아가 조금이라도 감형받으려고 (감금을) 핑계 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발적으로 통장을 팔았다는 범죄단지 근무자 E씨는 "처음에는 통장을 팔러 유명 대형 단지에 가서 잠깐 갇혀 지냈다"며 "단지는 (단속에) 걸려도 감금당해 있었다고 하면 끝이라서 한국에 돌아가도 비교적 형량을 낮게 받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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