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중심가에 있는 턱틀라 사원 정문 안으로 들어서자 스님이 망자의 소원을 비는 불경 소리가 스피커에서 새어 나왔다.
입구에 차려진 식탁에서는 방금 '7일째 제사'를 지낸 현지인 망자의 유가족들이 삭발한 채 식사하고 있었다.

캄보디아 수도권 일대에서 화장 시설을 갖춘 몇 안 되는 불교 사원으로 현지에서 사망한 외국인 대부분이 장례를 치르는 곳이다.
사원에서 만난 한 캄보디아인은 19일(현지시간) "이곳에서는 가족 장례를 치를 때 남자들은 삭발한다"며 "불교 문화권이어서 사망 후 7번째 되는 날과 100일째 되는 날에 또 제사와 의식을 지낸다"고 설명했다.
턱틀라 사원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붉은색 페인트가 칠해진 시신 안치소가 보였다. 가는 길 곳곳에는 캄보디아 독립 기념탑 모양을 본뜬 가족 유골함이 한쪽에 늘어서 있었다.
동행한 현지인 가이드는 "캄보디아에서는 가족이 죽으면 집에 유골함을 모신다"면서도 "돈이 있는 사람들은 평화를 상징하는 독립 기념탑 모양으로 유골함을 만들어 따로 사원에 망자를 모시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냉동시설 환풍기가 요란하게 돌아가는 시신 안치소 앞에서는 중국인 유가족이 화장을 앞두고 관을 붙잡은 채 통곡하면서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다.
영정 사진이 놓인 탁자에는 과일뿐만 아니라 가짜 달러와 종이로 만든 집 모양의 장난감도 놓였다. 다음 생애에는 부자로 환생해 잘 살라는 의미라고 현지인은 설명했다.

이 사원 안치소는 지난 8월 캄보디아 깜폿주 보코산 인근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 한국인 대학생 박모(22)씨 시신이 두 달 넘게 보관된 곳이다.
그는 지난 7월 17일 "박람회에 다녀오겠다"며 캄보디아로 출국했다가 현지 범죄 단지인 이른바 '웬치'에 감금돼 고문당했고, 한 달도 안 돼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에서 박씨를 목격했다는 이들 중 일부는 그가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사망했다고 증언했다.
현지 경찰이 지난 8월 보코산 일대 차 안에서 박씨 시신을 발견할 당시 많은 멍 자국과 상처 등 심각한 고문 흔적이 온몸에서 발견됐다.
박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30∼40대 중국인 3명은 살인과 사기 혐의로 지난 10일 구속기소 됐고, 범행을 주도한 중국 동포(조선족) 등 2명은 현지 경찰이 쫓고 있다.
턱틀라 사원에서 일하는 현지인 직원은 "한국인 시신이 현재 안치소에 있다"면서도 "한국인이 몇 명인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원 관리자는 "안치소에 시신 100구가량이 보관돼 있다"며 "가족이 없거나 연락이 되지 않은 외국인 시신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6개월 넘게 보관한 시신도 있다"며 "가족이 찾으러 오거나 대사관에서 연락이 와야 화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사원에서는 하루에 시신 6∼7구가 화장되고 이 가운데 2∼3구는 중국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원 관리자는 "대부분 사인은 심장마비이고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살해된 경우도 가끔 있다"며 "젊은 한국인 시신도 들어오는데 많지는 않다"고 말했다.
박씨 시신 부검은 오는 20일 오전 턱틀라 사원 안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안치소에서 시신을 꺼내면 사원 내 별도 시설에서 부검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관과 경찰 수사관 등이 현지 관계자들과 함께 부검해서 박씨 사인을 확인하고, 부검 결과는 공식 절차를 거쳐 국내 수사기관에도 통보될 예정이다.
부검이 끝나면 박씨 시신은 곧바로 턱틀라 사원에서 화장되며 이후 유해도 한국으로 송환될 전망이다.
경찰 관계자는 "일단 현재까지 계획으로는 부검이 끝나면 바로 화장한다"며 "유가족이 참관하는지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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