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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주인 지식인’ 없는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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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4-08 21:42:48 수정 : 2019-04-09 08: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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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철학자의 편파적 역사관은 / 조국에 대한 근본적 배반이자 / 지성의 천박함을 드러내는 것 / 계몽 대신 선동하는 광대같아

철학이 반드시 역사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고, 논리가 반드시 실증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인간의 말이 반드시 행동으로 실천되는 것은 아니다. 둘 사이에는 간극이 있기 마련이다. 철학자 헤겔은 노예야말로 보편적인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했지만 역사는 결코 그렇지 못했다. 역사의 주인은 항상 창조적 소수였고, 그렇기에 다수의 민중에게는 역사적 주인이 되도록 계속적인 계몽과 교육이 필요했다.

서양 철학사에서 헤겔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는 인물로 마르크스와 니체를 들 수 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손(孫)제자로 헤겔의 절대정신(유심론)을 유물론(절대물질)으로 뒤집은 인물이다. 니체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을 부정하면서 프롤레타리아의 ‘노예도덕’ 대신에 주권적 개인의 최종승리자로서 초인(超人)을 떠올렸다. 말하자면 초인은 자신과 세계의 주인이 된 인물에 붙여진 가시면류관과 같은 것이다. 헤겔의 주인-노예론은 철학적으로 그럴듯해 보여도 역사적으로는 설득력을 잃었다. 마르크스의 공산사회주의운동은 프롤레타리아를 주인의 자리에 올려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평등을 목표로 운동한 다수의 민중은 소수의 공산당 귀족만 새로 만들고, 스스로 감시감독을 받은 전체주의의 노예로 전락했다. 권력은 소수의 전유물이었으며, 민중은 주인은커녕 의식마저도 종속적인 인간형을 드러냈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서구근대사를 보면 자유민주주의 속에서도 다수의 시민이 주인의식을 갖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으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우리의 지식엘리트들은 아직도 다수국민을 스스로 주인이 되게 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해방과 더불어 한민족에게 던져진 과제인 자유와 평등의 두 마리 토끼는 오늘날까지도 남북분단과 함께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여기에 가장 심각한 장애는 일제식민지 시절에 길러진 노예근성과 조선조 농업사회의 유산인 지주-소작제의 폐습으로 인한 계급의식과 갈등이다. 이러한 유산은 한국인으로 하여금 근대시민으로서의 발전과 성장보다는 회한과 분노로 몰아넣기 일쑤였다.

최근 대중철학자 김용옥이 KBS방송 ‘해방과 신탁통치’라는 공개강연에서 “이승만을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고 행한 발언은 그가 몸담고 있는 조국에 대한 근본적인 배반이었으며, 이것은 대한민국 반체제-종북운동과 역사지우기의 하이라이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지적 오만과 허영은 대한민국을 있게 한 장본인에 대한 모독과 배은망덕이며, 자유로써 자유를 배반한 자기배반의 절정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김용옥의 이승만에 대한 발언은 시인 고은이 일찍이 시집 ‘백두산’(1987년)을 통해 백두혈통인 김일성을 미화한 것에 못지않은 대한민국에 대한 배반행위이다. 한동안 노벨문학상을 타기라도 할 것처럼 문단정치를 하고 매스컴을 몰고 다니면서 매명을 일삼던 고은의 서사시에 등장하는 ‘아기장수 김바우’는 누가 보더라도 김일성이었다.

대한민국의 지식인이나 시인이 국가정체성을 훼손하고 가짜 김일성 신화에 세뇌되고 매몰되는 경거망동의 발언과 아부성의 작품을 내놓는 행위 자체는 대한민국을 해체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허황한 지식과 매명 뒤에는 항상 위선과 궤변과 간사함이 있다. 민중과 시세에 영합하는 지식인·시인의 행태는 그것 자체가 대한민국의 지성과 감성의 천박함을 드러내는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거짓사실과 왜곡, 편파적인 역사관에 기초한 김용옥의 발언은 평소 그에게 우호적인 사람마저도 귀를 의심케 하는 망발이었다. 그의 일련의 발언은 민중을 계몽하기보다는 선동하는 어릿광대 모습에 불과했다. 그의 행태를 보면 남의 책과 대본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착각하고 모방하고 표절하고 커닝하는 지식엔터테이너의 마인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기껏해야 번역가·지식연기자에 불과하다. 인류의 문화유산을 개인의 매명과 영광을 위한 들러리로 세우는 것을 서슴지 않고 있는 김용옥의 과대망상과 오만방자함과 심지어 아둔함은 드디어 건국대통령 이승만을 매도하고 말았다.

청년과 다중을 오도·호도하고 있는 그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매스컴을 이용해 최고 권력자에 추파를 던지는 꼴불견을 보여주었다. 진정 지식인광대이런가! 코미디언과 연예인과 변호사들이 주도하는 간사하고 저질스러운 여론의 장에 자칭 철학자가 발 벗고 나섰으니 실로 정치코미디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가장 최근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도 일구이언을 일삼았다. 아직도 사대와 당쟁과 부관참시의 역사적 악습과 폐단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는 한민족의 고질병을 ‘우주보(宇宙寶)’라고 자화자찬하는 그에게서 발견하는 일은 한민족의 집단적 자가당착과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이중인격과 인격파탄의 전형을 볼 따름이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대륙전체가 농업-봉건사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공산주의로 물들어 버렸을 당시 한반도의 남쪽(38선 이남) 반쪽 땅에 자유대한민국을 건설한 이승만의 공(功)을 독재라는 과(過)로 전부 지워버린다면 역사에서 살아남을 자가 누구이겠는가. 만약 이런 식으로 역사를 정리한다면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은 이미 역사의 죄인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승만이 아무리 대단한 과오와 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건국은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 지식인이여, 주인이 될 날은 언제이런가.

 

박정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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