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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와 게이샤 커피 [박영순의 커피 언어]

입력 : 2022-01-22 19:00:00 수정 : 2022-01-22 03:5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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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샤 커피 묘목. 20세기초 병충해에 강한 품종으로 발굴된 게이샤는 파나마로 전해져 향미가 가장 좋은 커피의 반열에 올랐다.

비싼 커피의 탄생은 ‘모나리자’가 세상에서 제일 비싼 미술품으로 손꼽히게 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04년 이후 해마다 커피 애호가들의 관심은 파나마 ‘게이샤’(Gesha·게샤) 커피의 경매가로 쏠린다. 2020년 9월 파나마 소피아 농장의 게이샤 커피(워시드)가 중국 업체에 1파운드(454g)당 1300달러에 팔렸다. 역대 최고 가격이다. 1㎏에 우리 돈으로 341만원이다. 로스팅 후 무게가 줄어 드는 것을 감안하면, 드립커피 한 잔에 사용하는 20g당 8만5000원가량인 셈이다. 한 잔의 원가가 8만원을 훌쩍 넘는 커피…. 4명이 마시면 24k 금 한 돈 값이 사라지는 커피에 우리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의 값이 67조원까지 거론되는 사연을 살펴보면, 게이샤 커피가 비싸게 팔리는 사정도 가늠할 만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비밀(이야기)이 많은 커피가 비싸다.

모나리자는 1507년에 그려졌지만 400년이 넘도록 걸작의 대열에 끼지도 못했다. 1911년 모나리자를 둘러싸고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이 연이어 만들어지면서 명품 타이틀이 붙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일하던 잡역부가 밤새 창고에 숨어 있다가 아침에 옷짐 속에 모나리자를 숨겨 훔쳐갔다. 당시 박물관이 도난당한 사실을 하루 동안 알지 못할 정도로 모나리자에 대한 대접은 시원치 않았다. 가뜩이나 정부에 대한 민심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모나리자 도난 사건은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는 빌미가 돼 거의 한 달 동안 모든 신문이 모나리자 사건을 톱기사로 다뤘다.

그러다가 잊히기 시작할 때쯤 2년 만에 도둑이 잡혔다. 세상은 ‘돌아온 모나리자’로 다시 떠들썩해졌다. 더욱이 도둑이 이탈리아 사람으로, “훔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작품을 되찾아 온 것이다”고 주장하면서 흥행성은 더욱 고조됐다. 프랑스 신문들은 물론 세계의 외신들이 사건을 수십일간 다루면서 모나리자는 그야말로 ‘하우스홀드 네임’

게이샤 커피도 1931년 영국 학자들에 의해 에티오피아에서 수집됐을 때 그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병충해에 강한 면모를 보여 중남미 커피재배자들의 눈길을 끄는 정도였다. 하지만 향미가 뒤처지고 수확량이 떨어지는 데다 키우기가 쉽지 않아 외면까지 받는 분위기였다. 1963년 코스타리카 산골에 묻혀 자라던 게이샤는 파나마로 넘어가면서 급이 바뀌게 됐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은행장, 한스 엘리엇이라는 스웨덴 농장주, 에메랄드 보석, 커피에서 신을 보았다는 심사평 등 여러 이야기들이 보태지면서 게이샤는 마침내 하우스홀드 네임이 됐다. 게이샤 커피의 맛은 꽃향기, 꿀같이 달면서도 풍성한 패션푸르츠의 느낌, 긴 여운과 부드러움 등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런 인상을 주는 커피는 사실 게이샤 말고도 많다.

모나리자를 베낀 ‘해킹 모나리자’도 4억원에 경매에 나왔다. 게이샤라고 하면 출처를 따지 않고, 심지어 진짜 게이샤 품종인지도 확인하지 않은 채 흥분하고 열광한다. 발에 걷어차이는 게 게이샤 커피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모나리자 사건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게이샤 커피를 거기에 비할 바인지는 곱씹어 볼 일이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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