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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내전은 현대 문명 사회의 최대 비극 중 하나로 꼽힌다. 1992년부터 3년간 이어진 전쟁에서 ‘인종청소’와 대량학살이 자행돼 무려 25만∼30만명이 숨졌다. 당시 유엔 평화유지군이 학살행위를 막기 위해 세르비아에 파견됐지만 오히려 인질로 잡히는 수모를 당했다.

유엔이 국제분쟁에서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지 오래다. 출범 초기 6·25전쟁에서 침략자를 응징한 것을 빼곤 성공 사례를 찾기 힘들다. 유엔은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중 어느 한 국가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얀마 군부 쿠데타로 민간인이 1700명 이상 살해됐는데도 미얀마군에 우호적인 중·러의 반대로 규탄 성명조차 내지 못했다. 2010년대 초반 시작된 시리아 내전에서도 50만명이 숨졌지만 유엔은 수수방관했다. 소말리아 해적 소탕이나 르완다 내전 등 아프리카 분쟁지역에 파견된 평화유지군도 해당 국가의 무장세력에 쩔쩔매기 일쑤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무력침공에 돌입한 지 두 달여가 흘렀지만 유엔은 유명무실하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이 사흘 전 모스크바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해법을 모색하겠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다가 망신을 당했다. 유엔 측에서 아무도 배석하지 못한 가운데 크레믈궁만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땅 등을 내놓을 때까지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식의 기존 입장을 발표했다. 이 회담은 구테흐스 총장이 5m짜리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푸틴의 일방적 설교를 듣는 모양새가 됐다.

남의 일이 아니다. 북한이 올해 들어 13차례나 탄도미사일을 쏘며 유엔 결의를 위반했지만 중·러의 반대로 추가 제재는 고사하고 규탄 결의안조차 나오지 못한다. 북한이 7차 핵실험이나 무력도발을 감행해도 별반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유엔이 26일 총회에서 처음으로 상임이사국 견제장치를 담은 결의안을 채택했다.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열흘 이내에 총회에서 그 이유를 설명토록 한 것이다. 부당한 거부권을 막을 수는 없지만 외교적 압박 효과가 작지 않다. 유엔이 이번 조치를 밑거름 삼아 세계평화의 전도사이자 국제분쟁의 해결사로 거듭나기를 고대한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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