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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공보물이 오면 꽤 꼼꼼히 보는 편이다. 지역 일꾼을 제대로 뽑고 싶은 욕심이 절반이라면 나머지는 기삿거리가 될 만한 게 없는지 찾는 것이다. 6·1 지방선거 공보물도 유심히 들여다봤다. 서울시장 후보부터 교육감, 구청장, 시의원까지 한 명씩 다 살펴봤는데, 뭔가 찜찜했다. 구의원 후보 공보물이 없었다. 배달 착오가 있는 줄 알고 다시 살폈는데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무투표 실시안내’라고 적힌 종이를 발견했다. 현재 거주하는 자치구에는 기초의원 선거구 3곳이 의원정수와 후보자 수가 같아 투표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설명서였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공보물이 오기 전에 이번 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자가 509명이나 된다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정작 기사 쓸 때 대부분 지역구가 영호남에 몰려 있어서 다시 굳어진 지역주의 탓이려니 여겼다. 그런데 서울 한복판에서 무투표 지역구를 겪어 보니 제대로 된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건가 돌이켜보게 됐다.

최형창 정치부 기자

의원정수가 2명일 때에는 정의당 등 제3당 후보가 출마하거나 더불어민주당 또는 국민의힘에서 ‘나’번까지 출사표를 던지면 투표를 해야 한다. 이번 우리 선거구에서는 제3당에서 아무도 나서지 않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역시 1명만 전략적으로 내보냈다. 우리 지역 국회의원과 통화해 보니 “의원정수는 2명밖에 되지 않는데 대선에서 패배한 당이 무슨 면목으로 ‘나’번까지 후보를 내겠나”라며 “제3당에서 아무도 나오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그래서 기초의원 중대선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란 선거구 여러 개를 합쳐서 한 번에 3∼5명 정도의 의원을 선출하는 방식을 말한다. 소수정당에서 꾸준히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번 선거를 앞두고는 전국 11곳에서만 시범 실시된다.

화가 쉽게 가라앉지 않아 우리 동네 구의원이 얼마나 세비를 받는지 알아봤다. 연봉이 약 4300만원이었다. 내가 낸 세금을 1년에 4300만원이나 받아가는 사람을 뽑는데 무투표 당선이라는 이유로 공보물조차 받아보지 못해 더 괘씸했다. 무투표 당선이 확정되면 벽보도 붙지 않고, 현수막도 걸리지 않아 누가 출마했는지 알 길이 없다. 오로지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야 당선자를 확인할 수 있다. 이마저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에 서투른 어르신에겐 높은 장벽이다.

무투표 당선자들도 억울한 면은 있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무투표 당선자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도록 제한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책과 공약을 널리 알리고 싶은데 선거법이 제약하는 현실이다. 국가에서 보전하는 선거운동비용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지만 유권자들이 당선자 정보를 접할 기회가 사라진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결국 피해는 국민이 볼 수밖에 없다. 지역의 대표를 주민이 투표로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유력 정당이 ‘임명’한 꼴이기 때문이다. 주민을 보고 일해야 할 지방의원이 공천권을 가진 사람에게 충성 경쟁을 하는 지금의 시스템은 분명 문제가 있다. 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명제이지만 이젠 정말 실천에 옮겨야 할 때가 됐다. 기초의원 정당 공천제를 폐지하든지, 중대선거구제를 전면 도입을 하든지 둘 중 하나는 정말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최형창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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