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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한국 경제에 대재앙이 들이닥쳤다. 그해 여름 어선은 기름이 없어 돛을 달고 출항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동안 사라졌던 물레방아가 다시 등장하기도 했다. 자고 나면 공장은 조업을 중단했고 감원 한파가 세차게 몰아쳤다. 이란혁명에서 촉발된 ‘2차 오일쇼크’가 절정에 달했던 때다. 정부는 그해 3월 석유제품 가격을 9.5%, 4개월 후 재차 59% 올렸다. 소비자물가는 18%나 뛰었다. 민심은 흉흉해졌고 부마(부산·마산) 사태,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등 극심한 사회·정국 혼란이 이어졌다.

1차 오일쇼크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1973년 10월 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자 산유국들이 동시 감산에 돌입했다. 국제유가는 이전에 비해 4배가량 뛰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이어졌던 서방 선진국의 장기 호황이 막을 내리게 된다. 당시 한국 경제는 고물가와 무역적자에 시달렸으나 기업들의 중동 진출로 벌어들인 달러로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이번에는 세계 2위 산유국 러시아발 오일쇼크의 망령이 세계를 떠돌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서방의 대러 제재 여파로 원유와 가스 등 에너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국제유가는 지난해 말 배럴당 70달러대에서 5개월 만에 120달러대로 급등했다. 산유국 협의체인 오펙플러스가 증산을 합의하고 미국·영국 등 주요국이 전략 비축유를 풀어도 소용이 없다. 국제유가가 조만간 150달러를 웃돌고 올 연말 200달러도 위협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유럽에서는 올겨울 가스와 석유 배급제를 시행하는 방안까지 거론된다.

3차 쇼크는 2∼3년에 그쳤던 1, 2차에 비할 바가 아닌 듯하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얼마 전 “석유와 가스, 전기 위기가 동시에 발생했다”며 “이번 위기는 1970∼1980년대 오일쇼크보다 더 크고 더 오래갈 것”이라고 했다. 세계은행도 “세계 경제가 1970년대에 겪은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위험에 빠졌다”면서 “향후 10년간 저성장이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원 빈국이자 개방경제인 한국도 충격을 피할 길이 없다. 머지않아 피 말리는 에너지 확보전쟁이 벌어질 텐데 비상한 각오와 유비무환의 지혜가 절실한 때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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