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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피지 않는 소백산 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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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6-10 23:02:07 수정 : 2022-06-10 23: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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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취재차 소백산 연화봉에 올랐을 때 얘기다. 환경부 기자단을 인솔하던 손우선 소백산국립공원북부사무소 계장이 정상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곳에서 등산로 옆 수풀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 ‘진짜 철쭉’이 있네요.” 그의 손가락이 향한 곳을 따라가니 사람 가슴 높이 푸른 잎 사이로 연분홍 꽃이 드문드문 보였다. ‘이게 진짜구나.’ 어쩐지 그런 감탄이 일어 괜히 남들 따라 스마트폰을 꺼내 꽃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역시 진짜의 힘!

‘진짜’가 있다면 ‘가짜’도 당연히 있을 터. 때맞춰 손 계장의 손가락이 조금 움직였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바로 거기 ‘가짜 철쭉’이 있었다. 언뜻 보면 진짜 철쭉과 꽃 모양은 비슷하나 색깔이 훨씬 짙었다. 그래서인지 진짜보다 잎의 푸른빛도 더 짙고 꽃 자체도 훨씬 더 풍성한 느낌이었다. 손 계장은 “많은 분이 이 친구를 철쭉이라고 부르는데, 이건 완전히 다른 종”이라고 말했다.

김승환 환경팀 기자

그 정식 명칭은 영산홍. 우리가 흔히 관공서나 공원에서 자주 보는 그 꽃이다. 일본 사스끼철쭉을 원예종으로 개량한 것으로, ‘진짜 철쭉’과 달리 어떤 환경에나 적응을 잘하는 게 특징이다.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종이라지만, 그게 ‘가짜’ 꼬리표를 붙일 이유가 될 순 없다. 영산홍이 해발 1300m 높이에서 철쭉과 비교당하는 처지가 된 건 순전히 인간의 무지 때문이었다. 1990년대 소백산 내 군사시설이 빠진 자리에 지방자치단체가 이전에 자생하던 철쭉 복원 사업을 벌였는데, 그때 대거 심은 게 나중에 알고 보니 철쭉이 아니라 영산홍이었단 것이다.

생물종 연구가 이어지면서 착오가 드러났고, 2007년에야 소백산국립공원북부사무소가 해발 1000m 이상 지대에 ‘진짜 철쭉’ 복원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어디서나 잘 자라는 영산홍과 달리, 철쭉은 매우 까다로워 복원 착수 이후 6년간 세 차례 시도가 실패했다. 그러다 2013년에 심은 철쭉 500주가 80% 수준의 생존율을 보여 어렵사리 복원에 성공했다.

그래서 소백산 철쭉 복원기가 그렇게 ‘해피엔딩’을 맞이했느냐고 묻는다면, 시원하게 ‘네’ 하고 답하기가 어려울 듯하다. 능선을 따라 만개한 철쭉꽃을 기대하며 최근 소백산에 올랐을 등산객들은 특히 공감할 것이다. 이들은 인터넷에 ‘소백산 철쭉’이라 검색하면 흔히 나오는 사진과 달리, 연분홍빛을 찾기 힘든 풍경에 실망했을 것이다. 기자가 연화봉에 오른 날에도 소백산 능선은 꽃이 드문드문 보일 뿐 거의 푸른 잎으로 덮인 모습이었다.

소백산 철쭉들이 살아는 있는데 제때 꽃을 틔우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저조한 개화율을 보인 게 벌써 4년이나 됐다. 겨울철 적은 적설량, 봄 한파 등 이상기후가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겨울인데도 해발 1000m 이상 고지대에 눈이 내리지 않고, 봄인데도 한겨울 추위가 이어지는 소백산. 지구 온난화의 한 단면이다.

결국 또 인간이 문제라는 소리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과거에 철쭉 복원을 한다며 영산홍을 심었던 건 인간의 ‘무지’ 때문이었단 거다. 이번엔 인간 활동에 따른 탄소배출이 지구 온난화의 원인인 걸 누구나 알고 있으니 ‘의지’의 문제라 봐야 할 것이다.


김승환 환경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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