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적인 눈요기감인 서민들의 꽃
日 제국주의가 애국심 상징으로 이용
가미가제 특공대 가슴에 벚꽃가지 새겨 필자:센세! 니혼노 하나와 사쿠라데스까?(선생님, 일본의 꽃은 벚꽃입니까?)
일어 선생님:치가이마스. 사쿠라와 쇼민다치노 하나데스(아닙니다. 벚꽃은 서민들의 꽃입니다).
필자:그럼, 일본의 꽃은 무엇입니까?
일어 선생님:일본의 꽃이란 것은 없습니다. 일반인들의 꽃은 벚꽃이며, 황실의 꽃은 국화입니다.
필자:그러면, 황실의 꽃은 왜 국화입니까?
일어 선생님:벚꽃은 온갖 꽃과 함께 봄에 피지만, 국화는 가을에 고고하게 홀로 피니까요. 황실의 꽃이 다른 꽃들과 함께 필 수는 없잖습니까?
◇도쿄 지요다구(千代田區)에 자리한 일본 최대 신사인 야스쿠니의 전경(全景). 신사 전면에 드리워진 휘장마다 황실의 꽃인 국화가 크게 그려져 있다. |
실제로, 황실을 대표하는 국화는 일본 국회의원(참의원)들의 배지에 새겨지면서 귀족적인 대접을 받는 반면, 벚꽃은 길거리의 맨홀 뚜껑 장식물로 쓰이면서 서민들의 발자국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국화는 또, 야스쿠니 신사의 휘장에서부터 메이지 신사의 제등(提燈)에 이르기까지 엄숙하고 경건한 모든 곳에 자리한 채 민중의 경배를 강요하지만, 벚꽃은 하나미(花見·꽃구경)가 시작되는 4월의 공산품(工産品)으로 뭇사람들의 한시적인 눈요깃감이 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무궁화는 동요에서부터 애국가를 거쳐 경찰관과 군인의 계급장에 이르기까지 전국 어디서나 쉽사리 접할 수 있는 국화(國花) 중의 국화(國花)다.
◇도쿄 지역의 하수도 맨홀 뚜껑에 새겨진 벚꽃 문양. 도쿄의 맨홀 뚜껑의 크기와 쓰임새에 따라 여러 종류의 벚꽃이 새겨져 있다. |
하지만, 그런 이어령도 일본의 꽃 문화에서 날카롭게 집어낸 것이 있었으니, 바로 벚꽃이 지니고 있는 조밀성이라고나 할까? 실제로, 일본인들은 여러 시집(詩集)들을 통해 예로부터 작으면서도 치밀하고 빽빽한 미(美)를 찬양해 왔다. 이에 따라, 일본의 고시집인 ‘만요슈(萬葉集)’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꽃 역시, 아주 작으면서도 다닥다닥 붙어있는 싸리꽃이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조밀성에 대한 일본인들의 사랑은 계속돼, 여학생들이 주고받던 은방울 꽃에서부터 바와 스낵, 다방의 이름으로 애용되는 등꽃에 이르기까지 작고 치밀하게 뭉쳐있는 꽃들이 으뜸 사랑을 받아왔다. 싸리꽃, 등꽃, 벚꽃 등이 지금도 ‘구와시하나’로 불리는 이유다. 구와시란 ‘자세한 것’을 뜻하는 일본어로 일본인들의 미의식을 거론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며, ‘하나’는 꽃이라는 뜻이다.
◇영국 맨체스터 소재 과학 산업 박물관에 전시된 일본의 가미가제 전투기. 당시 18세 안팎의 학도병들은 자살공격용으로 제조됐기에 날 수만 있도록 만들어진 전투기를 타고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비행기 앞 부분에 그려 넣은 벚꽃 문양이 인상적이다. |
해서, 수백만 개의 꽃송이가 한꺼번에 피었다가 일제히 지는 장관은 훗날, 일본 군국주의가 애국심의 상징으로 적극 활용하는 비극을 연출하게 된다. 히틀러의 뉘른베르크 전당대회에서 수십만 명의 나치 당원들이 펼치던 거대한 매스 게임이 일본에선 벚나무를 통해 구현된 것이다. 결국, “천황을 위해 아름다운 사쿠라 꽃잎처럼 져라”라는 군부의 슬로건은 막스 베버와 에밀 뒤르껭의 말대로 ‘사고(思考)’보다 강력한 상징으로 작용하며 일본인들이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도록 강요하게 한다. 그런 까닭에 고우영의 원작 만화 ‘일지매’에서는 주인공이 의적질을 하고 난 후 한 가닥의 매화 가지를 남기지만, 일본의 가미가제 특공대는 군복에 사쿠라 가지를 꽂은 채 미국 항공모함을 향해 자신의 전투기를 내리꽂는다. 꽃을 가꾸는데 신비한 기술을 가진 국민이 어떻게 폭력을 숭상하며 미치광이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지,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가 좀처럼 풀지 못했던 수수께끼의 정해(正解)라고나 할까?
그런 일본인들의 세계관이 꽃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는 백미(白眉)가 바로 꽃꽂이다.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인공적인 자연물의 극치. 오랫동안 고이 키워온 꽃송이들을 자르고 꺾어서 시각적인 즐거움을 위해 인위적으로 배치하는 이기적 탐미주의가 군국주의자들의 그것과 흡사한 까닭에서다. 그러고 보니, 조그마한 나무를 화분에 심어 놓고, 조이고 틀며 붙들고 묶어서 더욱 작게 만드는 분재(盆栽) 역시, 멀쩡한 자연물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려는 사무라이적 기질과 맞닿아 있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꺾어도 예를 다하며 잔치 때는 생화(生花)를 자르기보다 종이로 만든 지화(紙花)를 백자 항아리에 놓고 판을 벌인 게 우리네 조상이라는데…. 일본에 대한 글을 쓰면 쓸수록 이웃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적·정서적·역사적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심훈 한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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