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팍팍한 삶’ 대변 … 사회적 이슈 소재 많아
“무수한 별처럼 신춘문예 문을 두드렸지만 좀체 제게는 열리지 않는 문이었어요. 또다시 열리지 않을 줄 알면서 두드려 봅니다. 언젠가는 열릴 거라고 희망을 가지면서….” 2013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응모한 박모씨가 원고지 끝에 적은 글귀다. 그의 탄식처럼 경쟁률이 수백 대 1에 이르는 신춘문예를 통한 등단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하지만 박씨처럼 열정적인 ‘문청(文靑·문학청년)’들이 있기에 한국문학은 정체하지 않고 끊임없이 당대와 호흡하며 세대교체를 이뤄나갈 수 있다.
16일 서울 가산동 세계일보 편집국에서 신춘문예 시와 단편소설 부문 예심이 열렸다. 지난달 22일부터 15일까지 시는 850명, 단편소설은 607명이 각각 응모했다.
시의 경우 1인당 3편을 기본으로 요구하는데 10편 넘게 낸 응모자도 있어 작품 수로 치면 3000여 편에 이른다. 22명이 응모한 문학평론 부문은 예심 없이 바로 본심에 돌입했다.
예심 심사위원들은 이날 11시간 가까운 숙고와 논의 끝에 시 부문 26명, 단편소설 부문 12명을 뽑아 본심에 올렸다.
문학평론을 포함한 본심 결과는 2013년 1월1일자 지면을 통해 공개한다. 예심을 맡은 문인들한테 올해 신춘문예 응모작의 특징과 아쉬운 점 등을 들어봤다.
2013 세계일보 신춘문예 예심이 열린 16일 수북이 쌓인 원고 더미를 들추며 ‘옥석’을 가려내려는 심사위원들의 눈빛이 날카롭다. 왼쪽부터 문학평론가 이경재, 시인 맹문재·문성해, 소설가 표명희·구경미씨. 남제현 기자 |
10대 학생부터 70대 고령자까지 응모자 연령이 예년보다 다양해졌다. 미국·캐나다·중국·일본·프랑스·싱가포르 등 외국에 거주하는 이들의 과감한 도전도 눈에 띄었다. 청년실업과 경제난 등 사회 안팎의 어려운 여건 탓인지 죽음·자살·비정규직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이 유난히 많았다.
시인인 맹문재 안양대 교수는 “한때 유행한 ‘미래파’ 스타일의 시는 거의 없고 서정시가 완전히 주류를 이룬 것 같다”며 “그런 면에서 시 형식의 실험성은 좀 떨어진다”고 평했다. 그는 “시를 읽다보니 가족에 관한 얘기가 자주 눈에 띄었다. 사회가 살기 어려워지니까 가족을 많이 그리워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시인 문성해씨는 “몽골 등 외국 여행 경험을 토대로 한 작품이 많은 게 인상적이었다”면서 “다수의 시가 대학 문예창작과 등에서 제법 공부하고 쓴 티가 난다”고 평했다. 그는 “다만 기교는 있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통 알수없는 기교는 불편하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이슈 다룬 소설은 ‘양날의 칼’”
소설가 표명희씨는 단편소설 응모작을 살펴본 뒤 “고독사·독거노인 등 요즘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 유품 정리사나 남 대신 싸워주는 사람 같은 신종 직업을 소재로 한 작품이 여럿 눈에 띄었다”며 “특히 ‘고독’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소설가 구경미씨는 “전반적으로 예년보다 실력이 향상되고 다루는 주제 폭도 더 넓어졌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한 뒤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한 소설은 잘 쓰면 가점 요인이지만, 뉴스에 보도된 정도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면 오히려 감점 요인이란 점에서 ‘양날의 칼’과 같다”고 조언했다.
문학평론가인 이경재 숭실대 교수는 “응모작의 90% 이상이 기존 소설 문법에 충실한 안정적인 작품”이라며 “그만큼 신인다운 패기를 엿볼 수 없어 아쉬웠다”고 말했다.
그는 “분명히 한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인데 뜬금없이 ‘제임스’ ‘안나’ 같은 이름을 쓰면서 맥락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게 눈에 거슬렸다”고 꼬집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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