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임종 못지킨 회환…알려지지 않은 인간적 고뇌 담아
피터 폽햄 지음/심승우 옮김/왕의서재/2만5000원 |
신간 ‘아웅산 수치 평전’에서 저자는 미얀마 대신 버마라는 국명을 사용한다.
이 나라에서 국명은 국가정체성과 직결되는 아주 민감한 문제다. 지난해 11월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이 나라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테인 세인 대통령을 만나서는 ‘미얀마’를, 야당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의원을 만나서는 ‘버마’라는 국명을 사용했다. 1989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 정부는 국호를 버마에서 미얀마로 변경했으나, 수치로 대표되는 민주화 인사들은 버마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한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미얀마’라고 부른다.
국명 사용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저자는 이 책에서 시종 우호적이고 존경어린 시선으로 수치의 정치역정과 인간적인 면모를 전한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 인물인 수치의 정치역정을 소개한 책은 여러 권 있었지만, 인간적인 고뇌와 개인사를 상세히 다룬 전기는 그동안 없었다. 책에서는 특히 정치적 탄압을 받으며 두 아들의 엄마와 한 남자의 아내로서 겪어야 했던 가슴앓이가 절절히 그려진다.
가택연금을 당하며 그는 영국에서 성장한 아이들과 떨어져 살아야 했다. 수치는 그 고통을 이겨내며 지인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로서 치러야 했던 가장 큰 희생은 아이들을 포기한 것이었어요, 하지만 다른 동지들은 저보다 훨씬 큰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립선암을 앓던 남편이 임종을 눈앞에 뒀지만 조국을 떠나지 못했다. 남편을 만나기 위해 미얀마를 떠나는 순간 군부가 재입국을 막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당시 고문을 당하는 것같이 괴로워했다고 지인들은 전한다. 남편의 임종 소식을 접하고 그는 “나는 항상 내 바람을 이해해주는 남편이 있어서 진정 행복한 여자였다. 그 무엇도 내게서 남편을 빼앗아갈 수는 없다”고 적었다.
2011년 3월 민주주의민족동맹 양곤 본부에서 저자와 인터뷰하는 아웅산 수치. |
1991년에는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나, 남편과 두 아들이 대신 수상해야만 했다. 2010년 석방된 수치는 지난해 노르웨이에서 21년 만에 노벨상 수락 연설을 하는 감격스러운 장면을 연출했다.
20년 넘게 ‘인디펜던트’지의 해외주재 기자로 활동하는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미얀마에서 5년간 당국의 눈을 피해 취재활동을 벌여 많은 자료와 증언을 확보했다. 특히 수치의 단짝이었던 마 테잉기의 미출간 일기를 확보해 그의 인간적 모습을 잘 그려냈다. 매서운 추위에 떨며 옥스퍼드의 난방기구가 그립다고 투정하거나, 남자아이들 셔츠를 꿰매주다 두 아들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린 일화가 그의 일기에 실려 있다. 남편 측에서 얻은 미공개 사진 자료도 풍성하다.
수치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의 가택연금 해제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미얀마 군부에 보내는 등 정신적 유대를 맺었다. ‘평창스페셜올림픽’ 개막식에 초청돼 28일 한국을 방문하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회동을 갖는다. 국립5·18민주묘지 참배·김대중평화센터 방문 등의 일정도 예정돼 있다.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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