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이 노부오 지음/노희운 옮김/형설라이프/1만2000원 |
콜럼버스는 신대륙에 첫걸음을 내딛던 날인 1492년 10월12일 담배 잎을 손에 쥐고 있던 원주민과 만난다. 이 담배는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에 전해진 새로운 식물 중에서 가장 먼저 주목을 받았다.
담배는 당시 유럽에서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졌고, 나중에는 페스트에 대한 가장 뛰어난 예방약으로도 대접받았다. 그래서 1664년부터 1666년까지 영국 런던에 페스트가 유행했을 때 어린아이도 강제로 담배를 피우게 했다.
일본의 식문화사가인 사카이 노부오(78)가 쓴 ‘씨앗 혁명’은 담배를 비롯해 감자·고무·카카오(초콜릿)·고추·옥수수 등 6개의 식물 얘기를 다룬다. 신대륙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이 식물들이 어떻게 유럽 문명과 세계 역사를 바꿔 놓았는지 설명한다. 이들은 인류의 역사를 바꾼 ‘문명의 씨앗’이었던 셈이다.
담배는 미국 건국의 기초를 다지는 데도 일조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당시 북아메리카의 식민지에서 유럽으로 질 좋은 담배를 수출해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였고, 이를 통해 식민지 경제가 활로를 찾았고 번영의 기반을 잡았다는 것이다.
유럽에 상륙한 감자는 처음에 천덕꾸러기였다. 울퉁불퉁한 외모 탓에 한센병의 원인으로도 지목됐다. 이 같은 이유로 일부 지역에서는 감자 식용을 금지하는 법률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감자 재배가 늘어나며 겨울에도 돼지 사료를 조달할 수 있게 됐고, 이 덕분에 유럽에 본격적인 육식사회가 도래하게 됐다.
또 자동차 타이어 소재로 쓰이는 고무, 많은 사람이 간식으로 즐기는 초콜릿, 세계의 조미료가 된 고추, 그리고 동물의 사료로 육식사회를 지탱한 옥수수가 없었다면 우리의 문명은 현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컬럼버스 씨앗이 가져온 긍정적인 면만 조명한 것은 아니다. 마지막 장에서는 신대륙 발견 이후 원주민의 삶이 얼마나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는지도 보여주고 있다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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