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될 줄 알았으면 잭슨이 그렇게 무리하게 백인이 되려고 절치부심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한 재벌가 출신 정치인의 말처럼 “사람은 누구나 출발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긴 어렵지만, 출신 배경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그리 정당하거나 떳떳하진 않다. 오늘날 세상은 생각보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공평하게 활짝 열려 있으므로.
하지만 일찍이 자유가 만개했다는 미국에서도 40∼50년 전까지만 해도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은 도를 넘었다. 모든 카페와 도서관, 영화관, 학교, 교회엔 흑인용이 따로 있거나 아예 출입이 금지되는 곳도 많았다.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 수 없었다. 어디에도 ‘흑인 사용 금지’라는 팻말은 없지만 ‘신사용’ 화장실은 ‘백인 신사’만 쓸 수 있는 곳이었고, 흑인은 이른바 ‘격리된 시설’에서 따로 용변을 해결해야 했다. 그야말로 부류가 다른 잡종 취급을 한 셈이다.
용감한 백인 사내 한 명이 나타났다. 신학도이자 음악이론가, 사진작가, 소설가였던 존 하워드 그리핀은 스스로 흑인이 되어보기로 작정한다. 피부과 전문의의 도움으로 백반증 환자에게 사용되는 약을 먹고 5일간 자외선에 온몸을 쪼여 피부색을 검은색으로 변화시켰다. 머리도 삭발했다. 영락없는 흑인이었다. 그는 인종차별이 가장 심했던 미국 남부의 딥 사우스 지역을 7주간 여행하며, 흑인이 겪는 차별과 편견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그는 몸서리 처질 정도의 경험을 ‘블랙 라이크 미’(하윤숙 옮김, 살림)에 고스란히 담았다. 변한 것은 오직 피부색이었을 뿐 이름이나 신분 등은 그대로 유지됐지만, 그가 흑인이 된 지 불과 몇 시간도 안돼 개인의 자질을 보고 판단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피부색을 보고 자신을 판단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흑인은 영화 포스터 속 백인 여자를 똑바로 바라봐서도 안 된다는 다른 흑인의 충고와 단지 다음 버스 편을 묻었을 뿐인데 버스 터미널의 매표소 여직원에게 받은 증오의 시선은 잊을 수가 없다.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지만, 피부색이 백인 여직원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이다.
자신의 체험을 발설했다는 이유로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KKK단으로부터 체인으로 테러를 당하기도 한 그의 이야기는 7주로 끝나지만, 7년 아니 70년을 흑인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
혹, 당신은 지금 이런저런 이유로 주변의 누군가를 차별하진 않는지 뒤돌아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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