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 27세에 요절한 천재 예술가로 그의 난해한 작품들, 제비다방과 금홍, 폐결핵 그리고 도쿄에서의 비참한 죽음들로 일정 부분 신화화되어 있다. 괴팍하고 난해한 인물로 오독되어 온 그는 탁월한 지식청년으로 30년대 일본과 조선을 풍미하던 모더니즘의 문화를 헤쳐나간 선구자이며 한국 최초의 전위예술가 중 한 사람일 뿐이다.
대륙침략의 병참기지화한 30년대 조선은 경제적 풍요를 바탕으로 모던 보이들이 출현하고, 예술에 있어서는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향토색 논쟁, 프롤레타리아 예술운동 등에 관한 담론들이 혼재된 시기였다. 아울러 유입된 모더니즘을 조선의 풍토에 맞게 재해석하기 위해 노력한 첫 시기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그 노력은 해방 전후의 정치적 질곡으로 실종되고 말았다. 따라서 30년대 모더니즘 운동이 가지는 한국현대예술사의 기점으로서 의미가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우리 시대 과제 역시 30년대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화적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서구의 모조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모던의 실체를 찾아 떠난 도쿄에서 이상이 발견한 것은 모조품으로서의 그것이었기에, 그가 도쿄를 ‘치사(恥事)’한 도시라고 탄식했던 일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김찬동 아르코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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