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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대 한국 모더니즘 재조명… ‘이상’을 추억하다

입력 : 2010-10-06 10:03:39 수정 : 2010-10-06 10: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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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문인 이상(李箱)을 기념하는 다양한 예술행사들이 펼쳐지고 있다. 아르코미술관에서도 ‘목삼씨(木3氏)의 출발’전을 개최하고 있다. 전시 제목은 이상의 시 ‘차팔씨(且8氏)의 출발’의 제목을 패러디한 것이다. ‘且8씨’는 그의 친구 구본웅을 지칭하는 ‘具씨’의 해자(解字)로, 이는 이상이 즐겨 사용하던 시작 기법이다. ‘목3씨(木3氏)’는 물론 ‘이씨(李氏)’인 이상을 지칭한다. 전시는 그의 성적표·사진·신문 삽화 등 이상 및 동시대의 문화적 자료들, 그리고 이상의 작품세계를 재해석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상은 시각예술·건축·문학·영화·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던 예술가로서, 아르코미술관이 지향하는 장르 융합과 통섭의 담론에 부합하는 매우 상징적인 인물이다. 1920년대 말과 30년대 식민지 조선의 모던적 문화현실 속에서 지식인으로서 그가 남긴 고뇌의 흔적들은 한국현대미술의 과제들을 재조명하기에 충분한 가치를 가진다.

이상은 27세에 요절한 천재 예술가로 그의 난해한 작품들, 제비다방과 금홍, 폐결핵 그리고 도쿄에서의 비참한 죽음들로 일정 부분 신화화되어 있다. 괴팍하고 난해한 인물로 오독되어 온 그는 탁월한 지식청년으로 30년대 일본과 조선을 풍미하던 모더니즘의 문화를 헤쳐나간 선구자이며 한국 최초의 전위예술가 중 한 사람일 뿐이다.

대륙침략의 병참기지화한 30년대 조선은 경제적 풍요를 바탕으로 모던 보이들이 출현하고, 예술에 있어서는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향토색 논쟁, 프롤레타리아 예술운동 등에 관한 담론들이 혼재된 시기였다. 아울러 유입된 모더니즘을 조선의 풍토에 맞게 재해석하기 위해 노력한 첫 시기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그 노력은 해방 전후의 정치적 질곡으로 실종되고 말았다. 따라서 30년대 모더니즘 운동이 가지는 한국현대예술사의 기점으로서 의미가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우리 시대 과제 역시 30년대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화적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서구의 모조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모던의 실체를 찾아 떠난 도쿄에서 이상이 발견한 것은 모조품으로서의 그것이었기에, 그가 도쿄를 ‘치사(恥事)’한 도시라고 탄식했던 일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김찬동 아르코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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