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 이모(27)씨는 최근 취업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보고 씁쓸함을 느꼈다. 이 글은 ‘자신만의 경쟁력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라. 지금은 인생 자체를 취업맞춤형으로 살아야 하는 시대다. 취업하기가 너무 어려워 스펙만으로는 합격하기가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이씨는 “기껏 학점과 토익 점수를 올려놓았더니 스토리가 중요한 경향이 됐다”며 “내세울 만한 경험이 없어 동아리 활동 등을 최대한 하면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채용과정에서 학점과 영어 점수, 자격증 등 ‘스펙’보다 개성 있는 경험과 같은 ‘스토리’를 강조하면서 취업준비생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취업준비생들은 “스펙도 결국 스토리가 아니냐”며 불만을 쏟아낸다. 일부에서는 스토리를 만드는 모임까지 생겨나고 있다.
3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기업들은 스펙 위주의 신용사원 채용방식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 SK그룹은 ‘바이킹 챌린지’ 전형을 지난해부터 도입했다.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6개 주요 도시를 돌면서 오디션 형식의 예선을 거쳐 별도의 합숙 평가 등으로 최종 합격자를 가려내는 방식이다.
포스코(POSCO)는 인턴 선발에서 ‘탈스펙 전형’을 하고 있다. 인턴 지원서류에서 학력과 학점, 사진란을 삭제했다. 대신 지원자들이 도전정신과 창의성 등을 자유롭게 적은 에세이를 제출하도록 했다.
기업들은 채용설명회 등을 통해 “스펙에서 벗어나라”고 주문하고 있지만 구직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스토리는 스펙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여대생 이모(25)씨는 “기업이 좋아하는 스토리는 굉장히 특이한 스토리”라며 “특이한 경험은 해외활동이나 대외활동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러한 경험도 결국 스토리가 아니냐”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사이에 ‘스토리=특별한 경험’이라는 공식이 퍼지면서 스토리를 만들기 위한 모임이 생겨나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한 취업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최근 ‘스토리로 취뽀(취업뽀개기)합시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해당 글에서 “이번에 제대로 스토리 한 번 만들어 보실 분들을 찾는다. 기업에서 진정 원하는 인재에 대한 결론은 물론이고 자기소개서나 면접에서 쓸 것들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겠죠?”라며 ‘현직자 100명 인터뷰하기’에 동참할 사람을 모집했다.
신은종 단국대 교수(경영학)는 “지원자는 평범한 이야기라도 진솔하게 풀어내고, 기업은 그 이야기를 듣고 지원자의 능력이나 잠재력을 평가하는 것이 진정한 스토리 전형”이라며 “이를 위해 기업들은 채용 전문가를 키우는 등 투자를 늘리고, 지원자들은 인문학 독서를 많이 해 스스로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성찰할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오현태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