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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발 택배 대기업들 “사업 접어? 말어?”

입력 : 2008-05-02 10:24:05 수정 : 2008-05-02 10:2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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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무한경쟁 재현, 급격한 수익악화가 원인

[이허브] CJ그룹 물류 자회사 CJ GLS가 2006년 5월 삼성물산 HTH택배를 인수하면서 시작된 국내 택배시장 인수합병(M&A)은 대기업 진출의 도화선이 되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택배시장은 M&A 이전의 무한경쟁 상황이 재현되며 급격한 수익 악화로 또 다른 선택의 기로에 몰려 있다.  

전문가들은 “나눠 가질 몫이 적은 국내 택배시장에 대기업들이 잇따라 뛰어들어 빚어진 당연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대기업 택배업체들은 초기 수익이 기대에 못 미치는데 다, 증차 금지 연장 조치로 배송 차량과 인력 확보의 어려움까지 겹쳐 사업을 계속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택배시장에 출구는 없는지 점검해 보았다.    

<편집자 주>

 

국내 택배시장은 1992년 (주)한진이 ‘파발마’라는 이름으로 택배 서비스를 선보인 후 대한통운, 현대택배가 잇달아 진출해 초기 시장을 형성했다. 이후 2000년대 들어 TV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의 등장으로 물량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다양한 중소 택배사들이 진입했다. 

차츰 시장 규모가 커져 현재는 이름만 남아 있는 ‘5세기 고구려’, ‘오렌지 택배’, ‘유니온 택배’ 등 30여사가 성시를 이루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 풍부한 유동성만 보고 우후죽순 뛰어든 기업 간의 경쟁은 전체 시장의 수익률을 악화시켜 잇따른 폐업과 대기업 M&A를 초래했다. 국내 택배시장에 불어온 1차 M&A 바람이다.

1차 M&A 후 10여사 남아…대기업 줄줄이 진입

전국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택배기업은 10여개 사로 줄었다. 2006년부터는 대기업들의 택배시장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국내 택배시장은 또다시 M&A 열풍에 휩싸인다. 1차 M&A 당시 생존한 일부 중소 택배기업들마저 대기업들에 하나둘 인수된다.

당시 대기업들의 시장 진출은 온라인 시장의 급성장과 택배 대중화로 외형적 물량이 급증하자 사업 다각화의 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작용했다. 

하지만 1차 때와는 달리 상당한 기반을 확보한 중견 업체들도 대상에 올랐다. 증가하는 물량을 처리하기 위한 대형 물류센터 투자(1개 물류센터 건축비용은 300억~500억원) 압박 등을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수익률 정체에 허덕이다 사업을 포기하는 업체들이 줄줄이 매물로 나왔다. 이처럼 2차 M&A는 대기업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신 택배 춘추전국시대’로 일컬어진다. 

2차 M&A는 2006년 5월 CJ GLS가 삼성 HTH택배를 인수하면서 불이 붙었다. 당시 HTH택배 인수가격은 365억원으로 시장 재편의 물꼬를 텄지만, 업계의 예상만큼 합병 시너지는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어 6월에는 국내 최대 유통그룹인 신세계가 기존 택배업체를 인수하지 않고 자체 영업소를 모집해 그해 11월 1일 쎄덱스택배를 출범시켰으나 이듬해 설 명절 배송에 차질을 빚으면서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2007년 1월에는 국내외 물류사업과 큰 연관성이 없어 보이던 유진그룹이 중견 택배사 로젠택배를 300억원에 인수했고, 2006년부터 꾸준히 택배시장 진출을 검토하던 동부그룹도 물류 자회사인 동부익스프레스를 통해 중앙일보에서 적자를 보며 운영해왔던 훼미리택배를 큰 비용 들이지 않고 사들였다. 

이미 2006년 초 고려택배의 일반 택배부분 지분을 인수한 두산그룹 박용오 전 회장의 아들, 박경원 대표가  2007년 초 하나로택배를 출범시켰고, 5월에는 동원그룹이 KT로지스 지분 인수를 통해 시장에 진입했다. 또 12월에는 동원택배가 기존 KT로지스 택배 인수로 규모를 키우지 못하면서 지속적인 적자로 어려움을 겪어오던 아주그룹의 아주택배를 인수한다. 

올 들어서는 끊임없이 매각설이 나돌던 옐로우캡 택배를 KG케미칼이 인수한 데 이어 금호아시아나 그룹이 국내 대표주자격인 대한통운을 인수하면서 숨 가쁘게 진행되어 온 택배시장의 2차 M&A도 막을 내리는 느낌이다.

후발 주자들 적자 허덕… 차량인력난에 존폐 위기

초기 한진, 대한통운으로 출발한 국내 택배시장은 16년이 지난 2008년 현재, 총 매출 2조 3000억원(업계 추정치) 규모의 대기업 각축장으로 변모했다. 

택배산업의 혼란은 2006년 적자 누적, 장기투자 한계, 본사와 개인 프랜차이즈 영업소 협력이란 구조적 문제에 시달리던 중견 택배업체들이 대기업에 인수된 후에도 영업소본사 간 수익률 배분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악화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중견 택배업체들은 연간 40억~50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었다. 물량은 늘어났지만 물량 확보 경쟁으로 배송수수료가 더 떨어져 서비스 인력들의 불만이 높아졌고, 이것이 본사와 영업소 간 불협화음의 원인으로 작용해왔다. 

현대택배 양성익 부장은 “한진, 현대택배 등 초기 대기업 택배사들은 10여년이 넘어서면서 현장 배송 협력사들이 어느 정도 안정성을 갖춰 수익 악화를 견딜 내성이 있지만, 새로 시장에 진출한 동부, 동원, 유진그룹의 로젠, 신세계 세덱스, 하나로와 같은 업체들의 일선 영업소는 지금의 경쟁구조를 버티기 힘들 것”이라며 “택배시장 3차 M&A가 올 날도 머지않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적자투성이 중견 업체를 인수한 대기업 택배사들의 수익은 인수 후 일정 시간이 지나도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적자 폭이 더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부익스프레스 택배는 최근 일선 영업소들이 배송 수수료 인상을 요구하며 조직적인 반발 조짐을 보여 서비스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신세계 그룹 세덱스 택배는 올해 초 대표이사가 바뀌면서 본사와 프랜차이즈 영업소 간 조율 부재로 마찰을 빚어 일부 수도권 서비스 조직이 붕괴됐고, 다른 지역 영업소 조직도 동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신세계 세덱스는 이탈되는 서비스 조직을 본사에서 직접 운영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증차 금지로 배송 차량과 인력을 구하지 못해 적자 폭이 커지고 처리 물량도 줄고 있어 존폐 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밖에 최근 인수된 K사는 군살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본사 조직을 개편함에 따라 직원 일부가 회사를 떠나고 남은 직원들의 불만도 가중돼 일선 영업소 조직의 물량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적자에 허덕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동원택배는 지난해 인수한 KT로지스와 아주택배 조직 간 불협화음으로 M&A에 따른 시너지는 고사하고 전체 조직이 흔들리면서 경영진의 고민이 가중되고 있다.

일선 영업소 붕괴 조짐…정부 시장진입 규제해야

2006년 시작된 대기업들의 택배시장 진입은 별도의 규제 장치가 없어 적자 기업을 인수할 자금만 있으면 가능했다. 이로 인해 1~2년이 지난 현재 대기업 택배업체들은 과도한 경쟁으로 수익은 저조한데 자금만 지속적으로 투입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대다수 택배기업의 연 수익률은 고작 2~3% 이며 M&A로 신규 진출한 대기업 택배기업도 고전하기는 마찬가지다.


문제는 일부의 예측대로 택배시장 3차 M&A가 가시화되면, 현재 이들 기업과 파트너로 일하는 일선 영업소들의 부실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그러지 않아도 운임 하락으로 프랜차이즈 영업소 직원들의 고통이 심한 상황에서 또다시 M&A 바람이 불면 자금과 영업력 부실로 한순간에 실업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국토해양부 물류산업팀 관계자는 택배시장을 화물운송시장의 일부로만 생각하고, 혼란을 겪고 있는 택배시장을 방치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택배시장 문제는 정부정책이나 업계의 인위적인 방법으로 해결될 수는 없고, 경쟁력 있는 기업만 살아남도록 시장원리에 맡겨야 한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한진택배 장지호 상무는 “무작정 차량 1대로 택배시장에 들어와 힘겨운 하루를 보내는 일선 배송직원들이 현재의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거리로 내몰릴 경우 큰 혼란이 올 수 있다”며 “정부의 신규 택배산업 진입 제한이나 M&A에 따른 실업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택배산업은 본사와 화물을 수·배송하는 전국 네트워크의 프랜차이즈 영업소가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뤄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택배산업의 한 관계자는 “최근 택배시장에 진출한 대기업이 수익에만 초점을 맞춰 현장을 독려할 경우 시장 조직 자체가 붕괴될 수 있는 만큼 무엇보다 상호 신뢰 구축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관련 부처가 마냥 손 놓고 바라보고 만 있을 때는 지난 듯하다. 

손정우 기자 jws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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