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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뷰] “본죽, 한식 대표브랜드로 뉴욕·로마 골목 점령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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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6-17 16:30:50 수정 : 2009-06-17 16: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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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中·日 등 5개국에 10개점 운영 본아이에프 김철호 대표
◇해외의 한국음식 전파에 나선 본아이에프 김철호 대표는 “한식세계화를 위해선 한식 메뉴 특화와 조리법 표준화가 필수적이다”라고 말한다.
지차수 선임기자
이탈리아와 일본, 중국의 음식이 세계 각국에서 대중화된 반면 한식은 아직 ‘찬밥’ 신세다. 정부가 ‘한식 세계화’를 들고 나왔지만 한식 비중은 아직 미미한 실정이다.

식음료 업체들은 이미 오래전에 해외시장 공략에 나섰다. 그동안 몇몇 기업은 세계 금융 위기와 현지화 실패로 매장을 철수했지만, 정부의 도움 없이도 한식을 들고 성공적으로 해외에 진출한 기업도 있다.

호떡장사로 시작해 해외 10여개의 ‘본죽’ ‘본비빔밥’을 운영하는 본아이에프 김철호(47) 대표에게 한식 세계화를 향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소총부대의 해외 진출=“음식산업을 총성 없는 전쟁으로 보면 대포도 필요하지만 보병부대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그 보병부대 역할을 하는 겁니다.”

해외 진출에 있어서 본아이에프는 대형 매장을 통한 공격적인 마케팅 대신 구석구석 파고드는 ‘생활형’을 택했다. 매뉴얼화된 요리들을 통해 국내에서 그러하듯 해외에서도 구석구석 골목마다 들어선 음식점으로 익숙해지겠다는 것이다. 각 매장마다 대박을 터트리진 못하지만 해외에서 ‘생계형’으로 음식점을 운영하는 소형 매장들을 통해 다가가겠다는 것. 생선을 좋아하는 일본에는 연어죽을, 가족 단위로 외식하는 중국인을 위해서는 비빔밥에 죽을 서비스하는 현지화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일본과 중국에 진출한 매장 손님의 70%가 현지인이다.

현재 미국 5곳을 비롯해 중국(4), 일본(3), 말레이시아(1), 베트남(1)에 들어서 있다. 숫자가 많지는 않지만 많은 기업들이 해외진출 2∼3년 안에 철수한 사례에 비추어보면 생계형 매장 전략이 들어맞은 셈이다. 메뉴도 역시 비빔밥과 죽 두 가지뿐이다. 대부분의 한식집은 떡볶이에서 삼겹살과 갈비, 냉면까지 ‘종합백화점’ 역할을 하는 것과 대비된다. 본아이에프는 이에 착안해 ‘특화’ 전략에 초점을 맞췄다. 비빔밥, 죽, 떡볶이, 불고기 등 브랜드별로 특화가 되고 표준화가 되면 단기 해외시장 공략이라는 목표 외에도 장기적인 한식 세계화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일본 요리, 이탈리아 요리 매장은 한국 사람들이 운영하죠. 그런데 해외의 한국 요리는 한국 사람들이 합니다. 외국사람들이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는 거죠. 세계화 한계의 단적인 예가 아닐까요?”

본아이에프가 추구하는 것은 외국인도 운영할 수 있는 한국 식당을 만드는 것이다. 이탈리아 식당, 미국식 햄버거 가게를 하던 외국인도 요리할 수 있는 표준화된 한국 음식으로 승부를 건다.

“2005년 해외시장 진출 초기 법률적인 문제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해외시장을 공략할 때 국내 관행과 법률상의 차이를 알려주는 매뉴얼이 가장 아쉽더군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은 몇 년간 수십명의 직원을 파견해서 현지 조사를 할 수 있지만 프랜차이즈 업체에게 쉬운 일은 아니죠. 정부가 ‘한식 세계화’에 팔걷고 나섰으니 이런 커다란 그림을 정부에서 제공하고 주력 ‘보병부대’를 육성하면 해외공략이 더욱 쉽지 않을까요.”

◆호떡장수에서 1000여개 체인점의 대표까지=지금은 국내에서 1000여개가 넘는 가맹점을 운영하고 있지만 사실 김 대표의 지난 10년은 혹독했다.

1997년까지만 해도 인삼가공식품업체를 운영하며 남부럽지 않은 회사의 대표직을 지냈지만 외환위기의 칼바람을 피해가지 못했다. 눈물로 회사를 정리한 그에게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그가 다시 시작한 사업은 호떡장사.

“그 시절에는 아는 사람과 마주치면 정말 죽고 싶었어요. 그래도 1000원에 3개 하는 호떡이지만 대한민국에서 제일 크고 제일 맛있게 하겠다’는 오기가 생기더군요.”

어느새 ‘숙명여대 앞 명물’이 된 김 대표의 가게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고 비법을 알려 달라고 매달리는 경우도 있었다. IMF의 된서리를 맞은 직장인들이 거리에서 창업을 시작할 때 그는 다시 창업컨설팅업체로 몸을 옮겼다. 3년의 창업 컨설팅 기간에 그는 사람들에게 모두 ‘죽집’을 권했지만 무릎을 치던 이들도 막상 계약을 할 때가 되면 죽집을 회피했다.

“죽집에 대한 확신이 있었어요. 죽은 아플 때 먹고, 병문안 갈 때 먹고, 아이들 먹일 때 먹는 음식이란 인식이 많잖아요. 아플 때는 건강할 때보다 영양과 맛에 대해 더 민감해지고, 어쩔 수 없이 먹는 죽이 아니라 맛있게 먹는 죽이라면 퍼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처음 죽집을 시작할 때 주변에서 김 대표를 말렸다. 서울 혜화동에서 시작한 죽집은 초기에는 정말 ‘죽쒔다’. 그러나 병원 포장을 위해 방문한 사람들이 점차 손님이 되면서 2호점, 3호점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이젠 가맹점을 포함해 총 매출액이 3000억원을 넘어섰다.

“가격이 비싸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완제품, 반제품 상태로 매장에 보내면 비용을 절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맛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근본(本)을 지키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정진수 기자 yamyam198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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