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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日한국인 삶 통해 화해·평화를 모색”

입력 : 2008-05-09 21:45:12 수정 : 2008-05-09 21:4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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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영화계 독보적 위치에 오른 재일동포 최양일감독
◇재일동포 영화감독 최양일. 그는 지난해 한국에서 제작된 영화‘수’를 연출해 주목받고 있다
재일교포 출신 영화감독 최양일(58·일본명 사이 요우이치)은 일본 영화계에서 ‘팔방미인’으로 통한다. 일본영화감독협회 이사장직에 두 번이나 선출됐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 아니다. 그는 재일교포 2세이자 부친이 조총련계라는 운명적 한계를 딛고 연출 극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고 일본 영화계를 선도하고 있다. 그렇다고 재일 한국인을 고난과 희생, 차별 등 식상한 소재로 묘사하는 그런 영화예술인은 아니다.

최 감독에게는 재일 한인사회가 풍부한 예술적 소재를 제공하는 곳일 뿐이다. 다분히 교포 2세다운 발상이다. 그는 재일 한인이나 밑바닥 인생을 사는 외국인들을 소재로 삼아 무거울 법한 주제를 코믹하면서도 냉철하게 그려내는 연출 기법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개척해 가고 있다.

일본에서는 재일 한국인의 인생역정을 영상물로 표현해 내는 예술활동이 활발하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험난한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만큼 담아낼 소재도 많다. 군국주의에 억압당한 재일교포 1세들의 역사를 물려받은 2세들은 어렸을 적 미묘한 차별 속에서 본명도 못 쓰고 감추다가 나이 들어 넓은 세계를 접하고 자신의 삶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된다.

최 감독은 그렇게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재일 한국인들을 묘사하는 데 땀을 쏟는다. 단순히 한일 간의 해묵은 과거사를 되짚는 게 아니다. 어제를 교훈 삼아 진실, 화해, 치유, 평화의 길을 모색하고 내일의 희망을 찾는 게 최 감독의 영화예술 목표다. 그는 “한국과 일본 양국 국민은 (영화 속)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희망, 용기, 힘을 찾아 한발 더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도 갖고 있다.

그가 띄엄띄엄 털어놓는 이력은 대략 이렇다. 나가노(長野) 현에서 태어난 그는 부친이 조선 국적이기에 조선인 초중고급학교를 다녔다. 고교 재학 시절 조명 조수를 구하던 선배 손에 이끌려 영화촬영장에 갔다. 오시마 나기사(大島渚) 감독의 문제작 ‘감각의 제국’(1967) 촬영 현장이었다. 일본 뉴웨이브 영화의 기수 오시마 감독과의 만남은 그의 인생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됐다. ‘감각의 제국’은 태평양전쟁 당시 사랑하는 남자의 성기를 잘라 자신의 성기 안에 넣고 다니던 매춘부의 실화를 ‘하드코어 포르노’로 만든 영화다.
◇영화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이를 계기로 그는 10년 이상 감독 조수로 시간을 보내다 1983년 영화 ‘10층의 모스키토’로 데뷔한다. 이 영화는 당시 가장 일본 영화 조류에 적합했다고 평가받았던 ‘하드보일드’ 영화였다.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간혹 찾아오는 딸에게 용돈을 주는 것과 스낵바에서 술 한 잔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인 15년 경력의 경찰관이 극한 상황으로 몰리면서 몰락해 가는 과정을 절제 있게 그려냈다. 이 영화는 현대 일본사회의 소외감과 위화감을 탁월하게 표현해 냈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이 영화로 마이니치신문 신인감독상과 요코하마 영화제 감독상을 거머쥐면서 일본 영화계에 혜성 같이 등장했다.

이후 대부분의 재일 한인이 그러하듯 최 감독에게도 ‘낯선 섬나라를 고향으로 두고 영원한 타인으로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고민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제주도 출신 재일교포 베스트셀러 작가 양석일의 ‘택시광조곡’을 각색한 영화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1993)는 이 같은 고민과 해법을 드러낸다. 그는 이 영화에서 교포사회에 초점을 맞춰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파헤치면서도 주인공이 직면한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과정을 코믹한 사랑 이야기로 그려냈다. 관객의 의표를 찌르는 발군의 표현력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달은 어쩌면 개개인이 간직하고 있는 제각기 다른 희망이거나 그들의 삶의 모습일 수 있다.

최 감독은 재일 교포와 필리핀인 등을 영화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신주쿠 가부키쵸라는 무 국적의 공간을 배경으로 아웃사이더들이 바라보는 일본사회를 냉정하면서도 온정 어린 시각으로 다루었다. 이러한 시각은 이후의 영화 ‘개 달리다’(1998)에서도 이어져 최 감독의 브랜드로 굳어진 하드보일드 작품들과 달리 따뜻한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는 유력 일본 영화잡지 ‘키네마 준보’의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주연배우상을 받고, 일본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등 11개 부문을 석권하는 등 일본 국내외 50여개의 영화상을 휩쓸었다.
◇영화 ‘피와 뼈’

역시 양석일의 소설을 영화화한 ‘피와 뼈’(2004)는 최 감독의 최근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영화는 그의 아버지 세대인 재일 한국인 1세대의 삶을 강렬한 느낌으로 그려냈다. 이 작품으로 최 감독은 2006년 일본 아카데미상 등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다. ‘피와 뼈’의 주인공 김준평에게는 희생이나 절망, 고난 같은 관습적인 재일 한국인의 이미지가 없다. 돈과 섹스, 핏줄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그는 폭군이자 악랄한 착취자다. 최 감독은 “모든 죄악을 모아놓으면 이런 인간이 나오겠다 싶을 만한 ‘괴물’이지만 내적 맥락을 가지고 인생을 역동적으로 사는 인물이기에 결론적으로 그가 싫지 않았다”고 밝혔다.

최 감독은 “한국과 일본의 근현대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을 엄정하게 파악하는 것은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지만 그것은 일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재일 한국인 1세들이 처한 희망과 절망 속에서도 다양한 인간관계가 존재했고 정치나 역사를 초월한 삶의 형태와 각기 다른 생의 욕망이 있었다”면서 “단순하게 이데올로기적 이분법으로 역사와 인간을 바라보는 건 영화적으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는 재일 한국인의 삶의 궤적은 영화 예술의 훌륭한 소재이자 인간을 되돌아보는 매력적인 매개체라는 그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피와 뼈’를 감상한 평론가들은 피해자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영화를 만드는 데 기본이 되는 건 인간이며, 인간에 대해 다각적으로 바라보는 눈, 또 인간을 둘러싼 환경, 시대, 역사에 대한 철저한 취재, 조사, 연구가 필요하다는 게 최 감독의 지론이다.

한국 영화와 일본 영화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도 최 감독이 역점을 두는 작업 중 하나다. 일본 영화는 작은 이야기를 섬세하게 터치하는 능력이 탁월한 반면, 한국 영화는 거칠면서도 다이내믹한 특성이 강하다. 이런 한국인의 특성은 재일 한국인이 영화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힐 수 있다. 일본의 유명 영화평론가 요모다 이누히코는 “일본의 영화, 문학, 연극, 음악 등 네 분야에서 60만의 재일 한국인이 30% 몫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람 수는 1억3000만명 대 60만명인데, 역할은 30%를 맡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영화감독협회 이사장 직을 연임하면서 표현의 자유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 온 그는 “지금 일본 영화계는 사상을 규제하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권력자들의 억압과 전쟁 중”이라고 말했다. 최근 영화 ‘야스쿠니’가 일본에서 상영문제로 시끄러운 상황을 꼬집은 것이다.

그는 한류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 일본 사람들은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문화나 정신을 수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한류의 부산물로 일본에서 한국어 배우기 붐이 이는 것은 한국을 알고자 하는 움직임이어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도쿄=정승욱 특파원

jswook@segye.com



최양일 감독 이력

·1949년 7월6일 일본 나가노현 출생

·1968년 도쿄에서 조총련계 조선인 중고급학교 졸업

·1983년 영화 ‘10층의 모스키토’로 감독 데뷔

데뷔작으로 마이니치신문 신인감독상, 요코하마 영화제 감독상 수상

·1989년 멜러물 ‘A사인 데이스’ 발표

·1993년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로 일본 국내외 50여개상 수상

·1998년 ‘개 달리다’ 발표

·2004년 ‘피와 뼈’ 발표, 닛간스포츠영화대상 작품상 수상

일본영화감독협회 이사장 취임

·2006년 제28회 일본아카데미 감독상 수상(피와 뼈)

서울에서 ‘수’ 개봉

일본영화감독협회 이사장 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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