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국무위원과 청와대 수석 인사에서 주요 현안을 둘러싼 당정 간의 엇박자, 최근 미국 소고기 수입을 둘러싼 파동에 이르기까지 새 정부 출범 후 국민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는 반성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담화 내용이 어느 정도 국민의 공감을 얻을지는 의문이다. 당장 통합민주당 등 야권은 “대통령이 국민 분노의 원인을 홍보 부족과 소통 부재, 근거 없는 정치공세로 인식하는 데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며 “진단이 잘못됐으니 올바른 해답이 나올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담화 내용은 크게 소고기 파문 관련 국민의 이해와 의견 수렴을 위한 노력이 부족했던 점을 사과하고, 미국과의 추가협의를 거쳐 수입소고기의 안전성과 검역 주권을 문서로 보장받았음을 밝혔으며, 17대 국회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FTA)비준안 처리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총론은 있었지만 각론이 없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국민은 대통령이 고개숙이는 사과만을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입 소고기 파동 등 정권 출범 후 그동안 제기된 국정운영 난맥상에 대한 전반적인 쇄신책과 가시적인 후속조치 등을 기대하며 담화를 지켜봤을 것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지금까지의 부족한 점은 모두 자신의 탓이라고만 했지 어떻게 책임을 지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소고기 협상을 졸속처리한 정부 당국자들의 책임 여부도 언급하지 않은 채 앞으로 더 낮은 자세로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국민건강, 검역주권과 직결된 문제를 소홀히 해 정부의 위신마저 크게 실추시킨 행태를 그냥 어물쩍 넘길 것인가. 구체적으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사과의 진정성이 느껴지고 국민의 공감을 사지 않겠는가.
이 대통령은 FTA 비준안 처리와 관련해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동시에 야당을 압박하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야당을 설득하면서 민심을 얻으려고 해야 마땅하다. 야권이 엊그제 국회에 낸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를 놓고 여야의 격돌이 예상된다. 대통령의 담화 발표에도 불구하고 소고기 협상 책임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누그러지기는커녕 계속 이어질 조짐이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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