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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현장] 유사시설 있어도 "짓고 보자"… 혈세가 줄줄

입력 : 2009-11-23 13:31:36 수정 : 2009-11-23 13: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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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자립도 최하위 인제 등 수백억씩 펑펑
대부분 공연·행사 한달에 한번 있을까 말까
"단체장 치적 쌓기용… 타당성 검토부터 해야"
지방자치단체들이 열악한 재정 형편에도 수백억원씩을 들여 활용도가 낮은 문화예술회관 건립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방에 문화예술 저변을 확대하고 배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기존 문화시설이 있는 데다 수요가 적은데도 새 시설 건립을 강행해 중복투자와 예산낭비, 단체장 치적 쌓기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22일 전국 지자체에 따르면 경북 경주시 황성동 황성공원에는 686억원이 투입돼 연면적 2만245㎡, 지하 2층, 지상 5층 규모의 문화예술회관 건립공사가 한창이다. 경주 문예회관에는 대·소공연장과 전시실, 야외공연장, 학습교실, 세미나실,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선다.

그러나 이 문예회관은 경북도가 경주시 천군동 보문관광단지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에 건립한 엑스포문화센터와 기능면에서 유사해 예산낭비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2007년 연면적 1만11㎡,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건립된 엑스포문화센터가 공연장과 전시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문예회관은 또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시설 유치에 따라 한국수력원자력㈜이 1280억원을 들여 짓기로 한 컨벤션센터와도 기능이 중복된다. 부지 3만3000여㎡에 연면적 1만7500여㎡ 규모로 건립되는 이 센터는 1층에 전시장 3개와 편의시설, 2층과 3층에는 회의실 10개를 갖출 예정이어서 전시기능 측면에서 겹친다. 뿐만 아니라 경주시 사정동에는 전시실과 공연장, 회의실 등 각종 문화시설을 갖춘 서라벌문화회관이 있다.

686억짜리 공사 현재 65%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는 경주 문화예술회관 모습.
경주=장영태 기자
특히 문예회관이 임대형 민자사업(BTL)으로 건립되다 보니 시가 삼성중공업 등 컨소시엄을 구성한 사업자에게 20년 동안 임대료 등으로 지급해야 할 비용이 무려 1200억원으로 사업비의 2배 가까이 된다. 시의 재정자립도는 28.1%(올해 애초 예산 기준)에 불과하다.

전남 장성군은 지난 2월부터 220억원을 들여 장성읍 기산리에 연면적 5943㎡, 관람석 900석 규모의 문예회관을 짓고 있다. 1000석 규모로 2006년 착공할 계획이었으나 군의회가 예산낭비라고 제동을 걸어 늦춰졌다. 이 문예회관은 광주시 북구 운암동 1700석 규모의 광주문화예술회관과는 승용차로 20여분 거리에 위치해 굳이 건립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제주시는 오라동에 연면적 9391㎡, 관람석 1100여석의 아트센터를 조성 중이다. 시는 “제주시민회관이 너무 낡아 새로 짓고 있는데, 예술공연을 할 수 있는 시설로 건립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제주시 일도동에는 892석 규모의 대공연장과 200석 규모의 소공연장을 갖춘 제주도문예회관이 있다. 이 문예회관은 2004년부터 3년간 리모델링을 해 오케스트라, 뮤지컬, 오페라 등의 각종 공연이 가능하다.

이미 문을 연 지역의 문예회관도 대부분 공연이나 전시가 거의 없어 무대와 객석 등에 먼지가 수북이 쌓이고 있다.

인구 16만여명의 경북 안동시에는 884석의 대공연장과 414석의 소공연장을 갖춘 안동시민회관이 있다. 대공연장에서 공연이나 행사가 열리는 날은 1년에 60여일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런 데도 안동시는 시민회관의 무대가 좁고 시설이 낡았다는 이유로 500억원 가까이 들여 1000석의 대공연장과 288석의 소공연장을 갖춘 문화예술회관을 짓고 있다.

대공연장은 독일식 무대개폐장치를 사용하는 등 유럽산 고급 설비를 들여와 대형 오페라 공연까지 가능하다. 회관 내에는 국제경기가 가능한 24레인의 볼링장과 4개국 동시통역이 가능한 국제회의장도 들어선다. 재정자립도가 15.2%에 불과한 안동시는 문화예술회관을 BTL방식으로 짓다 보니 20년간 사업자에게 모두 130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

강원 인제군은 367억원을 들여 지난 8월 공연장과 스포츠센터 등을 갖춘 ‘인제 하늘 내린 센터’를 개관했다. 이 센터에서는 연극이나 뮤지컬은 물론 오페라 공연까지 가능하다. 극장 제어부는 독일산, 무대장치는 이탈리아산, 조명시설은 일본산 등으로 꾸며져 국내 여느 문화시설과 견줘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지만 대공연장은 연중 대부분 비어 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예술공연과 영화상영을 할 뿐이다. 개관 후 지금껏 외부 대관은 한 차례 있었을 뿐이다. 인제군은 인구가 3만2000명으로 지난해 재정자립도가 전국 지자체 중 최하위였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최인욱 예산감시국장은 “지자체들이 단체장의 치적을 쌓으려고 무조건 대형 문예회관을 건립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업 구상 때부터 철저한 수요 조사와 타당성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에 맞게 충북 옥천군은 2005년 600∼700석 규모의 문예회관 설립안을 마련했다가 다른 지자체의 시설 운영 실태와 군 재정을 꼼꼼하게 따져 객석을 478석으로 줄이는 등 예산을 아껴 98억원으로 지난해 공사를 마무리했다. 대신 연간 2억∼3억원을 투입해 연극과 연주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월 2회 이상 공연하고 있다.

옥천군의 한 관계자는 “시골에서 공연 관람객은 최대 400∼500명이기 때문에 몸집을 줄이고, 필요한 장비만 외국산을 쓰고 대부분 국산을 사용해 작지만 활용도가 높은 문예회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박찬준, 경주·옥천=장영태·김을지 기자 ejkim@segye.com
■최근 주요 지역 문예회관 건립 현황
지 역 규모(석) 비용(억원) 개관 비 고
경주문예회관 1450 686 2010년 6∼7월 엑스포문화센터·컨벤션센터와 기능이 중복
장 성 문 예 회 관 900 220 2011년 3월 승용차로 20여분 거리에 1700석 규모의 광주문예회관
제 주 아 트 센 터 1184 314 2010년 2월 인근에 1092석 규모의 문예회관 있음
인 제 문 예 회 관 686 367 2009년 8월 월 1회 예술공연, 대관 없음
안동문예센터 1288 495 2010년 9월 임대형 민자사업(BTL)으로 20년간 사업자에게 1300억원 지급, 1298석의 시민회관 활용 저조
자료:각 지방자치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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