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서는 국무총리실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놓고 국무총리,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을 싸잡아 비난하는 글이 나돈다.
“법질서를 수호해야 할 판검사들이 되레 사회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우려가 쏟아져 나온다.
◆좀처럼 영(令) 안 서는 사법부 수장
양승태 대법원장은 2일 전국 법원장회의에서 “법관은 항상 조심하고 진중한 자세로 자신을 도야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은배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한·미 FTA를 비판하는 글을 올린 직후인 지난달 25일부터 벌써 세 번째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일부 판사에게 그의 말은 마이동풍이다.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계속 ‘개인의 소견’을 털어놓는다.
김하늘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법원장회의가 열리는 동안 “한·미 FTA 재협상 연구를 요구하는 청원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린 자신의 글에 110여명의 판사가 동의한 만큼 대법원장 면담도 요구하겠다고 한다.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 판사와 회원인 이정렬 창원지법 부장판사는 법원장회의 개회를 앞두고 라디오 프로그램과 인터뷰했다.
최 판사는 “한·미 FTA 국회 비준이 상당한 혼란 속에서 토론 기회가 봉쇄된 채 다수결이라는 숫자의 허상에 빠져 일방적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 판사도 “토론과 소통을 중요한 가치로 삼아야 하는 민주주의가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에서 오히려 유린됐다”고 주장했다.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요구받는 법관들이 대중이 듣는 방송에 출연해 야당 입장과 판에 박은 듯 닮은 논리를 편 것이다.
고심 큰 사법수장 현직 부장판사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논란에 사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법원 내 갈등이 확산되는 가운데 양승태 대법원장이 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 회의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검찰은 행정부 일원으로 총리의 지휘를 받는다. 검찰과 경찰을 모두 아우르는 총리실이 검·경 수사권 조정을 맡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검찰과 경찰 간에 권한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는 어디까지나 행정부 수반의 결심에 달린 문제다. 그런데 이완규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는 지난달 30일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주어진 수사지휘권은 국민이 부여한 검사의 권한”이라며 “언제부터 검찰이 총리실에 가서 지휘권을 ‘구걸’하는 조직이 되었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그는 “법무장관과 총장이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팔아먹었다”는 극단적 표현까지 써가며 직속상관인 한상대 검찰총장을 향해 “수사권 조정을 막지 못할 상황이면 사표를 내라. 검찰을 망쳐놓고 총장을 계속한들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대들었다.
◆“법질서 유지는커녕 혼란 부채질”
이처럼 법질서 유지에 앞장서야 할 판검사들이 되레 사회 혼란을 ‘부채질’하는 듯한 모습에 법조계와 시민단체는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부장판사 출신인 강구욱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미 FTA에 대한 찬반 의견은 논외로 하겠다”면서 “다만 법관은 사건이 벌어진 다음 사후에 판단하는 것이지, 아직 사건이 오지도 않았는데 미리 판단해서 발언하는 것은 법관 본질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바른사회사민회의 전희경 정책실장은 “대법원이 판사들의 의견 표명 행위에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하는데도 일부 법관이 지속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은 결국 판사들 스스로 사법부를 불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김태훈·장원주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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