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공휴일 지정 취지 무색
선관위 “근무일정 조정해야” “젊은이들이 투표하면 나라가 바뀐다고들 하잖아요. 우리 학교가 시행한 반값등록금을 다른 학교도 누릴 수 있길 바라면서 한 표를 행사했어요.”(서울시립대 권은향씨)
“10년째 일하면서 투표일에 쉬어 본 적이 없어요. 군대에서 투표한 게 마지막인 것 같네요.”(직장인 A씨)
4·11 총선 부재자 투표가 실시된 5일 전국 29개 대학에 부재자 투표소가 설치돼 뜨거운 투표 열기를 보였다. 반면 정작 임시 법정공휴일로 지정된 선거일 당일을 ‘휴무일’로 지정하지 않은 사업장에 다니는 직장인들은 ‘투표권 침해’를 호소하고 있다.
5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서울시립대 대강당에 마련된 4·11 총선 부재자 투표소에서 학생들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조성호 기자 |
5일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 대강당에 마련된 동대문구 제3부재자 투표소. 학생들이 20∼30명 줄지어 투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6일까지 실시되는 부재자 투표 신청을 한 시립대 학생은 모두 2593명. 전국 대학 가운데 가장 많은 숫자다. 투표소가 문을 열자마자 투표를 마친 시립대 학생 한상호(22)씨는 “고향이 충북 청주인데 평소에도 잘 가보지 못한다”며 “이렇게라도 고향을 대표하는 지도자를 뽑을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지방 출신 학생뿐 아니라 집이 서울에 있는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취업을 앞두고 있다는 김주연(23·여)씨는 “투표일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부재자 투표가 있어서 걱정을 덜었다”며 “일자리 대책을 내놓은 후보한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고 말했다.
시립대 김경원 총학생회장은 “학교 앞 카페의 협조를 받아 투표 인증샷을 찍은 학생에게 과자를 주는 행사를 하고 투표 안내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며 “학생들 호응도 좋다”고 말했다.
◆“투표일인데 출근하라네요”
선거일인 11일에도 쉬지 못하는 직장인들의 불만도 고조되고 있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는 선거일에 1∼2학년 수련회와 수학여행이 예정돼 있어 교사 일부가 투표에 참여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
교사 B씨는 “학교가 집에서 먼 선생님들은 투표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선거 참여를 방해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학교 관계자는 “수학여행 계획을 지난해 미리 짠 이후에야 총선일과 겹친다는 걸 알았다”며 “항공권 문제로 일정 변경이 어려워 부재자 투표를 적극 활용하라고 안내했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는 C씨도 선거일에 오전 10시까지 출근하라는 지침을 최근 받았다. 그는 “재보궐선거 때와 달리 오후 6시면 투표가 마감되는데, 평소보다 출근시간이 겨우 1시간 여유가 생기는 거라 투표를 하지 못하는 동료들도 많을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총선일은 법정공휴일로, 관공서는 휴무하고 일반 사업체는 투표권을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 근무일정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은 선거권 등 공민권 행사를 방해하는 사업장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11일 투표권을 보장하지 않는 사업장은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고용노동부에 고발할 예정이다.
조성호 기자 com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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