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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붉은악마와 사법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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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11-21 22:12:45 수정 : 2012-11-21 22: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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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악마’가 있었다. ‘태초에’는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였다. 이탈리아군은 세 종류의 수류탄을 갖고 있었다. 셋 다 붉은 칠이 돼 있었다. 이 수류탄은 적진에 투하해도 때로 폭발하지 않다가 가끔 뚱딴지같이 아군 진지에서 터졌다. 악마 같은 존재였다. 피아 모두를 두렵게 한 수류탄이라고 해서 붉은악마라고 했다.

한국축구대표팀 서포터스도 붉은악마다. 이것은 애칭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주최 대회 첫 4강신화를 쓴 1983 멕시코 청소년축구대회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외신은 ‘투지 넘치고, 악마같이 사납게 싸우는’ 태극전사들을 지칭해 ‘레드 데블(Red Devil)’이라 불렀다. 1998 프랑스 월드컵 예선을 앞두고 체계적인 응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그레이트 한국 서포터스 클럽’에서 붉은악마로 이름을 바꾸면서 지금의 모습이 됐다. 한때 박지성이 뛰던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벨기에 대표팀의 애칭도 붉은악마다.

붉은악마의 숫자는 2002 한일월드컵 때 부쩍 늘었다. 정식 회원이 아니더라도 경기장에 ‘Be the Reds!’라 쓰인 붉은색 옷만 입고 오면 붉은악마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국가대표팀 간 경기에서 처음으로 4강신화를 쓸 당시 경기장이나 서울광장, 전국 어디서나 붉은악마를 접할 수 있었다. 이 열기는 2006 독일, 2010 남아공 월드컵 때도 식을 줄을 몰랐다.

그라운드의 12번째 선수 붉은악마. 이 악마가 국내 법조계의 여성파워를 강화하는 데 적잖게 기여했다는 연구 결과가 인터넷에서 화제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박종희 교수가 쓴 논문인데, 4년 주기로 6월에 열리는 월드컵과 매년 6월 치러지는 사법시험 2차 시험이 겹치는 탓에 남자 고시생들은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반면 상대적으로 축구에 덜 열광적인 여성 응시생들이 유리해져 2000년대 들어 여성법조인이 100여명 더 선발됐다는 내용이다.

월드컵과 사법시험 성적의 인과관계는 고시촌에서는 10여년 전부터 회자돼 왔다. 2017년 사시제도가 폐지되면 이런 통계학적 자료는 추억의 이야깃거리로 남을 것이다. 이탈리아제 공포의 ‘붉은악마’처럼.

옥영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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