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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은 궁궐이나 도성, 사찰, 주거, 분묘 등을 지을 때 주변환경과 지상(地相)을 살펴 입지를 판단하는 풍수지리설을 신봉해왔다. 풍수(風水)의 자연현상과 그 변화가 인간생활의 행복과 재앙에도 깊은 관계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정한 것도 풍수지리에 의한 것이다.

이성계는 천도한 뒤 화형산(火形山)이라 불리는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 경복궁 남쪽에 숭례문(남대문)을 지었다. 그것으로 안심할 수 없어 숭례문 인근에 ‘남지’라는 연못을 팠다. 관악산보다 낮은 북악산 자락의 경복궁에 크고 작은 불이 계속 나자, 조정에서는 궁궐 남쪽 광화문 양 옆에 물기운을 몰아온다는 상상 속의 동물인 해태 석상 한 쌍을 세웠다. 이후 신기하게도 화재가 없어졌다고 한다.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神獸)로 여겨지는 해태는 그 모양이 사자와 비슷하며, 몸에는 비늘이 있고 머리 가운데에 뿔이 달렸다. 해태 그림은 불을 억누르는 부적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하지만 화마의 위협을 지켜내던 남지는 도시개발로 사라진 지 오래다. 게다가 광화문 해태상도 지난해 6월 복원공사로 치워졌다. 풍수적으로 남지, 해태상이 모두 없어진 상태에서 숭례문이 홀로 불기운과 맞서다 무릎을 꿇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해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정의의 동물’ 로도 알려져 있다. 이런 전설의 해태상을 많이 만들어 화기와 우환을 다스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스친다.

건물의 용마루 끝을 ‘어처구니’로 마무리하는 것도 건물에 재앙이 닥치는 것을 막는다는 신앙이 깃들어 있다. 어처구니는 중국 소설 서유기에 나오는 대당사부(삼장법사), 손행자(손오공), 저팔계, 사화상(사오정) 등 10가지 인물을 형상화한 잡상이다. 하늘에 떠도는 잡귀와 살(煞)을 물리쳐 건물을 지킨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해 숭례문의 어처구니 잡상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화재로 국보 1호를 잿더미로 소실하기 전에 전조가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현대과학 시대에 살면서 풍수지리적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대한민국의 자존심’ 숭례문을 지키지 못한 회한과 안타까움 때문에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이런저런 말이 떠도는 것 같다.

박병헌 논설위원

박병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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