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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성칼럼] 여가와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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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8-29 19:46:31 수정 : 2010-08-29 19:4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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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가 개인정체성 결정짓는 시대
삶 즐기면 국가경쟁력도 높아져
1950년대 우리가 경제 발전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침인사는 “진지 잡수셨습니까”였다. 얼마나 굶는 사람이 많았으면 식사했느냐는 질문을 인사로 했던 것일까. 당시 어려운 우리 생활을 표현하던 4자성어는 초근목피(草根木皮)였다. 이 말에는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벗겨 죽을 끓여 먹지 않으면 5월 초의 보릿고개를 넘지 못하고 굶어 죽던 암울한 우리 사정이 반영되어 있었다.

그 후 산업시대가 도래하면서 인사말은 “안녕히 주무셨습니까”로 바뀌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근무현장에 나온 사람들은 밤잠을 설치기가 예사였기에 잠을 제대로 자는 것이 중요했다. 물론 쿠데타를 포함해서 밤중에 하도 많은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밤을 잘 넘기기가 어려운 사람들도 있었을 듯하다.

◇서울대 교수 경영학(여가문화학회 회장·춘천 월드레저총회 공동유치위원장)
이번 여름에 우리 사이에 가장 널리 쓰인 인사말은 단연 “휴가 다녀오셨습니까?” 이다. 최근 어느 사장의 넋두리를 들었다. “직원들은 제주도로, 해외로 휴가를 다녀오는데 저는 아직 바닷가 근처도 못 가봤습니다.” 유난히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도 했지만, 이제 휴가를 다녀오지 않는 직장인들은 거의 없을 듯하다.

1985년 여름 프랑스 인시아드(INSEAD)라는 구주경영대학원에 초빙교수로 있을 때 현지 신문에서 한 컷짜리 만화를 본 기억이 난다. 일본이나 한국 사람같이 보이는 근로자들이 작업복을 입은 채 몽키스패너를 들고 지중해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줄지어 있는 파리지엔들의 자동차 행렬을 향해 “우리가 파리를 지킬 동안 여러분은 지중해에서 여름 휴가를 즐기고 오십시오”라고 인사하면서 손을 흔드는 그림이었다. 이제 똑같은 만화가 한국 신문에 게재될 때가 왔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인 대신 동남아 근로자들이 휴가지로 떠나는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20세기 산업사회에서 21세기 정보사회로 이동하면서 웰빙이라는 키워드로 대변되는 삶의 질은 이제 우리 삶의 목표가 되었다.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던 시대를 지나고, 이제는 잘 놀고 푹 쉬는 것에 대한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시대가 왔다. 과거 우리가 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면, 이제는 여가를 즐기는 것이 새로운 삶의 목표가 된 것이다.

여가는 우리의 삶, 더 나아가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가 ‘무슨 일을 하는가’로 사람을 규정하는 시대였다면, 현재는 ‘어떤 여가를 즐기는가’로 그 사람을 규정짓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 21세기는 놀이하는 인간, 즉 ‘호모 루덴스(Homo Ludens)’가 지배하는 여가의 시대이다. 공자가 2500년 전에 말씀하신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즉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보다 못한’ 세상이 21세기에 들어와 드디어 실현된 것이다.

공자 말씀은 국가경영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제 아는 사람으로 구성된 ‘지식사회’보다 삶을 즐기는 사람으로 구성된 ‘여가사회’가 더 바람직한 사회이다. 여가는 개인의 주관적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국가 경쟁력의 주요한 요소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여가경쟁력이 없는 사회, 즉 국민이 여가를 즐기지 못하는 사회는 힘을 결집할 수 없다.

춘천에서는 ‘레저 올림픽’이라 불리는 제11회 월드레저 총회 및 제1회 월드레저경기대회가 28일 개막되어 내달 5일까지 9일간 열린다. 춘천시와 월드레저기구(World Leisure Organization), 한국여가문화학회가 공동 주최하는 이 행사는 2년마다 한번씩 세계 주요 도시를 돌아가며 열리는데, 76개국에서 선수 1만8500명이 참가하는 매머드급 행사이다. 이 행사를 계기로 우리 모두 여가를 삶의 중심에 놓고 한국을 여가 경쟁력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서울대 교수 경영학(여가문화학회 회장·춘천 월드레저총회 공동유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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