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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성칼럼] 미화원 아주머니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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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10-05 17:24:45 수정 : 2010-10-05 17:2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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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 없애려 동시에 약 살포
부패관행도 한꺼번에 근절해야
며칠 전 어느 제약회사 영업 담당 중역인 지인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소개한다. “지난 일요일 모처럼 집에 있었습니다. 초인종이 울려 문을 여니, 아파트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바퀴벌레 약 살포기를 들고 계시더군요. 부엌을 비롯해서 구석구석 뿌려지는 약 냄새가 역겨워서 아주머니에게 따지듯 물었습니다. 

‘평소에는 주중에 일하시던데 오늘은 주말인데도 댁에서 쉬지 않고 오셨네요.’ 이에 대한 아주머니 답변은 망치같이 제 정수리를 내려쳤습니다. ‘저도 주중에 약을 뿌리면 좋지요. 그런데 주중에는 사람이 있는 집이 반밖에 안 되어서 며칠에 걸쳐 몇 집씩 나눠 뿌려야 한답니다. 

그렇게 되면 바퀴벌레는 약이 안 뿌려진 집으로 피했다가 약 기운이 사라지면 다시 옮겨 오거든요. 그래서 힘들지만 일요일에 와서 모든 집을 한꺼번에 뿌리는 거랍니다.’ 아주머니 말씀에는 제가 병원에 약을 팔면서 가졌던 고민거리의 해결책이 그대로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에 의하면 제약회사들이 약을 팔기 위해 일부 병원과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주던 관행을 최근 정부가 처벌하겠다고 나섰다고 한다. 그러나 오래된 관행이 근절되기는커녕 물밑으로 들어가 더 교묘한 수법으로 리베이트를 주고 받는다는 것이다. 

그는 리베이트가 없어지는 세상이 와야 한다고 믿는다. 리베이트 없이도 매출액을 계속 늘리고 있는 외국 제약회사를 보더라도 제품 경쟁력만 갖추면 잘못된 관행을 능히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제품 경쟁력이 없는 경쟁사들이 리베이트를 주고 고객을 빼앗아가려는 상황에서는 리베이트를 줄 수밖에 없다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고 한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던 그의 눈에 미화원 아주머니가 바퀴벌레 박멸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휴식을 포기한 채 주말에 와서 약을 살포하시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아주머니 말씀은 리베이트를 이용해서 쉽게 영업해온 그에게 ‘당신은 내가 박멸하려는 바퀴벌레’라는 선전포고로 들린 것이다.

정부가 아주머니의 지혜를 빌려 한날한시에 리베이트를 불법화하고 모든 제약회사가 약의 품질과 가격만으로 경쟁하게 한다면 우리나라 제약회사들은 대부분 정부정책을 따르리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윤리란 바로 미화원 아주머니의 지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어느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참석자들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나는 다음과 같은 가설적인 질문을 던지고 참석자들의 반응을 살폈다. “당신 회사가 세무사찰을 당했다. 

세무서에서 파견된 조사관은 며칠에 걸친 조사를 끝내고 세금을 내지 않은 몇 가지 사안에 대해 1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을 담당하던 직원이 내게 와서 귓속말로 속삭인다. 조사관 눈치를 보니 1000만원만 건네면 세금을 내지 않도록 해줄 듯하다고. 1000만원으로 해결하면 귀사는 9000만원을 절약할 수 있다. 

대신 우리 사회는 걷어야 할 세금 9000만원을 못 받는 것은 물론이고 뇌물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튀긴 구정물로 인해 더럽혀진다. 귀하는 그 직원의 제안에 따라 비밀자금을 1000만원 만들어 건네겠는가, 아니면 세금으로 1억원을 내겠는가?”

이 질문에 대해 대기업 중역들과 중소기업 창업 사장들로 구성된 참석자들은 대부분 1000만원으로 해결하겠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당장 돈이 없는데 무엇으로 세금을 냅니까?” 하고 반문한다. 나는 “나중에 탄로 나면 더 큰 피해가 오지 않겠는가”는 말로 얼버무린 채 적절한 답을 해주지 못했다.

미화원 아주머니의 지혜를 터득한 지금, 비슷한 기회가 온다면 다음과 같이 답변하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바퀴벌레 신세가 되지 마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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