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악의 印 보팔 참사 120억달러 배상”
기상천외한 사기극… 한 편의 코미디 보는듯
2004년 12월3일 영국 BBC가 생방송으로 내보낸 단독 인터뷰가 세계 주식시장을 혼란에 빠뜨린다. 인류 최악의 산업재해인 인도 보팔 참사가 발생한 지 20년째 되는 이날 다국적기업 ‘다우케미컬’ 대변인이 BBC에 출연해 “참사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 배상과 환경 복원을 위해 120억달러를 내놓겠다”고 밝힌 것이다. 배상 규모도 엄청났거니와 다국적기업이 해외 공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인정한 전례가 없었기에 반향은 컸다.
하지만 다우 측은 곧바로 BBC 보도내용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공식 부인한다. 보팔 사태는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며 기금을 마련할 계획도 없고, 심지어 다우에는 BBC에 출연한 피니스테어라는 대변인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진짜 대변인을 통해 발표했다.
BBC 역시 다우 대변인을 사칭한 사람의 정교한 사기극에 속아 잘못된 인터뷰가 나갔다며 보도내용에 피해를 입은 다우와 보팔 참사 희생자, 시청자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예스맨 프로젝트’는 이 지능적이고 대담하기까지 한 사기꾼이 킬킬거리며 BBC에 출연하게 된 이유와 과정, 그밖의 사기행각에 대해 털어놓는 다큐멘터리다. 그의 이름은 앤디 비크바움. 마이크 보나노와 함께 1996년 ‘예스맨’을 결성해 다우, 할리버튼, 엑슨 같은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은 물론 미국주택도시개발청(HUD)과 같은 정부기관, 세계무역기구(WTO) 등 주로 신자유주의 첨병들을 상대로 그들의 가증스러운 위선을 까발리고 끝모를 탐욕을 조롱해온, 그 바닥에선 꽤 악명 높은 반세계화 활동가다.
방법은 간단하다. 목표물이 정해지면 그들의 인터넷 홈페이지와 구분이 가지 않는 가짜 웹사이트를 만든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보면 어수룩한 언론사나 관련 콘퍼런스 관계자가 이메일로 인터뷰나 강연을 요청해 오기 마련. 그러면 게임 끝이다. 해당 기업이나 기관 관계자를 사칭해 이들이 얼마만큼 인류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고 지구환경을 망치고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이벤트를 펼친다.
영화는 ‘예스맨들’의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익살스러운 상황 묘사, 당하는 이들의 당혹해하는 모습 등으로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코미디를 보는 느낌이다.
신자유주의 실체와 폐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인데도 경쾌한 접근과 간결한 설명으로 지루한 틈을 주지 않는다. 우스꽝스러운 굼벵이 모양의 캐릭터 인형은 핼리버튼이 야심 차게 준비 중인 최첨단 구호장비로 소개되고, 엑슨의 신개념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사체를 연료로 한 양초가 등장한다.
야유와 조롱, 비판으로 일관하는 영화는 아니다. BBC 사태 이후 환경 개선 대신 이미지 개선에 막대한 돈을 퍼붓는 다우의 모습에서는 시장 만능주의의 몰염치가 느껴지고, 인명 피해가 크면 클수록 수익성은 높아지고 사체가 쌓일수록 에너지원은 넘쳐난다는 풍자에 오히려 손뼉을 치는 청중의 모습에서는 신자유주의의 섬뜩함이 전해진다.
두 예스맨은 “멍청한 짓을 비웃기만 하는 것 또한 멍청한 짓”이라며 영화 말미에 좋은 뉴스만이 가득한 6개월 뒤 가상의 뉴욕타임스를 찍는다. 다국적기업과 이들에게 이론적 젖줄을 대는 싱크탱크, 그리고 이들 논리에 포박된 정부라는 철의 삼각동맹이 강제한 미래가 아닌 우리 스스로 결정한 미래를 꿈꿔 보자는 것. 그리고 “꼭짓점 소수가 나쁜 뉴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밑바닥 우리도 좋은 뉴스를 만들 수 있다”며 변화를 위한 다양한 방식의 실천을 제안한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2004)을 공동 제작한 커트 앵펠이 함께 연출한 이 다큐멘터리는 지난해 파주 DMZ국제다큐멘터리, 베를린, 선댄스 등 다수 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다. 25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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