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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에서도 나라걱정 하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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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2-18 19:31:00 수정 : 2014-06-22 14: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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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씨 속 추모객 10만여명 3㎞ 조문 행렬
全 前대통령 "사단 내 성당신축 부탁 들어줘"
이강국 헌재소장 "사랑·희망 주시고 가셨다"
◇ 18일 저녁 고 김수환 추기경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 시민들의 조문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8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성지인 명동성당을 찾았다. 현대사의 굴곡을 함께 걸어온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애도하기 위해서다. 광주 민주화운동 탄압을 통해 집권한 전 전 대통령과 군사정권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은 김 추기경, 명동성당은 아픈 현대사를 압축한 듯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오전 11시쯤 전 전 대통령이 특유의 검은색 중절모에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명동성당에 나타났다. 그는 방명록에 ‘제12대 대통령 전두환’이라고 쓴 뒤 곧장 대성전으로 향했다. 유리관 앞에 선 그는 눈을 감은 채 합장해 애도를 표했다. 전 전 대통령은 김운회 주교와 몇 마디 나눈 뒤 2분 정도의 짧은 조문을 마쳤다.

◇18일 휠체어를 타고 서울 명동성당에 마련된 고 김수환 추기경의 빈소를 찾은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씨가 고개를 숙인 채 추모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전 전 대통령은 몰려든 취재진 인터뷰를 피하지 않았다. “김 추기경과 인연이 많지 않느냐”는 질문에 엷은 웃음을 지으며 “인연이 깊다”고 답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내가 1사단장으로 있을 때 지학순 주교님과 함께 오셔서 사단 내에 성당을 지어달라고 부탁을 해 들어준 적이 있다. 보안사령관을 할 때도 개인적으로 초청해 저녁식사를 대접한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특히 “사람이 때가 되면 가는 것이지만 어려울 때 도와주시고 조언을 해주고 가셨더라면 좋았을 텐데 애석하다”고 말했다. 그는 “김 추기경과 악연에 대해 말해 달라”는 질문에는 입을 닫았다.

김 추기경 선종 사흘째인 이날도 명동성당에는 시민 10만여명의 발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추기경을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새벽 4시30분쯤부터 조문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성당 측이 대성전 출입문을 오전 5시50분에 열고 조문객을 맞았지만, 행렬은 금세 명동역 앞 대로까지 3㎞가량 길게 늘어졌다.

추기경과 남다른 인연이 있는 추모객의 발걸음은 더욱 무거워 보였다. 최근까지 28년간 추기경과 연락을 해 왔다는 송영웅(67)씨는 “문병 갔을 때 병상에서도 나라를 걱정하시더라”며 “추기경은 얼마나 세심하신 분인지 누구를 만나든 그 많은 사람 이름을 다 불러주셨다”고 회상했다.

이틀째 성당을 찾은 추기경의 조카 송희숙(59·여)씨는 “작년 추석 전후로 병세가 호전됐을 때 문병 간 내 아들, 딸에게 ‘하늘나라 가기 전에 너희 결혼하는 걸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며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시니 울고 울어 눈물이 다 말라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은 오전 8시40분쯤 조문을 마친 뒤 “2년 전 가톨릭에 입문한 뒤부터 추기경님 뵙기를 기다렸는데…”라며 “사랑과 용서, 희망, 용기를 주신 우리 시대 큰 어른이 가셨다”고 안타까워했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  조은님·유선희 인턴기자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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