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아침 기상점호와 함께 눈을 뜬 연평부대 해병대원들은 부산하게 움직였다. 지난달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중단된 사격훈련 재개 준비작업을 서둘렀다. 대원들은 K-9 자주포를 포상에 전개하고, 박격포탄을 나르며 먼저 간 고(故) 서정우 하사와 문정욱 일병을 떠올렸다. ‘만약 저들이 도발한다면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짙게 깔린 해무는 오전 내내 연평도 해상을 뒤덮었고 이로 인해 예정된 훈련시간은 늦춰졌다. 드디어 오후 2시30분. 사격 개시 명령이 떨어지고 K-9 자주포에서 첫 포탄이 해상으로 발사됐다. 뒤이어 105㎜ 견인포, 81㎜ 박격포, 벌컨포 등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북 도발로 사격훈련이 중단된 지 27일 만이다. 대원들 가슴에 맺힌 응어리도 포탄에 실려 날아갔다.
해상사격훈련 구역은 그날과 같았다. 연평도 서남방 가로 40㎞, 세로 20㎞로 구분된 지역으로, 북쪽 끝 지역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남쪽으로 10㎞ 떨어진 지역이다. 1시간34분 동안 TOT(일제타격) 방식으로 2000발 가까이를 쏜 뒤 훈련은 종료됐다.
훈련을 지켜본 해병대 관계자는 “연평부대 편제화기 대부분이 사격훈련에 동원됐다”면서 “북의 추가 도발을 염두에 두고 사격훈련에 나서 대원들의 눈빛에서 그 어느때보다 긴장감이 감돌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앞으로도 연평부대 대원들은 북한의 그 어떤 도발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군 당국은 이날 해상사격훈련에 들어가기까지 훈련 개시 시점을 놓고 고심을 거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연평도 인근 해상의 안개가 예상보다 더디게 걷혀 군 관계자들이 애를 태웠다. 우리 군의 사격훈련에 대해 북한이 ‘자위적 타격’을 거듭 경고한 터라 북한의 추가 도발 움직임을 면밀히 관측하고 유사 시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선 북측 지역의 기상도 좋아야 했다.
이에 따라 군 당국은 훈련 개시시간을 오후로 미뤘고, 이 과정에서 훈련기간이 25일로 연장될 것이란 얘기가 나돌았다. 쉽사리 나아지지 않던 기상 상황은 오후 2시가 지나면서 좋아졌고, 군 당국은 최종적으로 훈련시간을 오후 2시30분으로 결정하고 사격훈련에 나섰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군이 국립해양조사원 인터넷 홈페이지에 고지한 훈련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였다.
군 당국은 사격훈련이 재개된 이날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정보채널을 총동원해 북한군의 동향 파악에 나서는 한편, 도발 시 강력하고 철저한 응징을 위해 육·해·공군 합동전력을 비상대기토록 했다. 우선 북한이 방사포로 연평도를 공격하면 연평도에 새로 배치된 대포병레이더인 아서(ARTHUR)로 사격원점을 찾아내 K-9 자주포와 다연장로켓(MLRS) 등으로 타격을 가하는 계획을 세웠다.
우리 쪽의 대응사격에 북한군이 후방에 있는 사거리 60㎞의 240㎜ 방사포까지 동원하면 비상출격한 F-15K와 KF-16 전투기로 도발원점을 정밀타격하는 시나리오를 마련했다. F-15K에는 사거리 278㎞의 공대지미사일 ‘SLAM-ER’(AGM-84H), 사거리 105㎞의 ‘팝아이’(AGM-142)와 위성항법장치(GPS)를 이용해 정밀타격이 가능한 합동직격탄(JDAM) 등이 장착됐다.
또 군은 이지스구축함인 세종대왕함(7600t급)을 비롯한 한국형 구축함(KDX-Ⅱ·4500t급) 2척을 서해상에 전진 배치해 만일에 있을 사태에 대비했다. 북한의 해상·공중 침투에 대비한 요격시스템이 가동된 것이다.
군이 연대급의 통상적인 포사격 훈련이라고 했던 연평도 사격훈련에 이처럼 합동전력이 총동원됐다. 그만큼 군이 북한과의 ‘기싸움’에 신경을 썼다는 의미다.
박병진·이귀전 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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