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은 지난달 4일 경기도 용인시가 용인경전철㈜에 5159억원을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우리 지자체와 민간 시행사 간 분쟁에 왜 프랑스 파리에 있는 ICC가 개입했을까. 용인시가 2004년 7월 용인경전철과 맺은 실시협약에 ‘각종 분쟁 발생 시 국제중재로 해결한다’는 내용이 들어간 탓이다. 용인경전철에는 국내 기업 외에 캐나다 봄바디어사 자금이 들어 있다 보니 국제중재로 해결하기로 계약한 것이다.
올해 무역 규모 1조달러 시대를 맞으면서 국내 기업이 국제 분쟁에 휘말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국제 분쟁의 가능성은 더 커진다. 중재 한 건에 걸린 액수도 수백억,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이미 국제중재시장에서 5배 이상 큰 경제 규모를 갖춘 중국과 일본을 제치고 ‘빅 클라이언트’로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상대국 법원보다 중립적인 중재기관에서 상사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글로벌 트렌드인 만큼 국내 기업도 철저히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사중재 외에도 한·미 FTA를 비롯한 FTA와 82개 투자협정(BIT)에 들어 있는 투자자·국가소송제(ISD)에 따른 투자중재 대비도 절실하다.
27일 대한상사중재원(KCAB) 등에 따르면 매년 ICC에 제기되는 700∼800건의 국제중재 중 30∼40건이 한국 기업과 관련된 것이다. ICC는 주로 투자중재만을 다루는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센터(ICSID)와 함께 대표적인 중재기관이다.
한국은 아시아권 국가 가운데 ICC의 최대 고객 중 하나로 꼽힌다.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ICC가 접수한 국가별 국제중재는 한국이 151건으로, 중국(마카오 포함) 125건, 일본 101건, 싱가포르 83건, 홍콩 61건을 단연 앞섰다. 현대오일뱅크 지분 매각을 놓고 2조5700억원 규모의 분쟁을 벌인 현대중공업과 아부다비 국영석유투자회사(IPIC) 분쟁, 대한생명 매각을 둘러싼 2조3000억원 규모의 한화컨소시엄과 예금보험공사의 중재사건도 포함돼 있다.
대한상사중재원 오현석 팀장은 “외환위기 때 국내 자산을 해외에 매각했는데, 2000년 이후 이를 둘러싼 분쟁이 벌어지면서 우리나라가 국제중재시장에서 주요 클라이언트로 부상했다”고 말했다.
통상전문가들은 상품, 자본, 서비스 거래가 전문화하고 복잡해짐에 따라 소송을 대신해 중재의 활용도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한다. 김앤장의 윤병철 변호사는 “언어, 번역, 의사소통 등 여러 측면에서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감수해야 하는 소송보다 중립적인 기관의 중재를 선호하는 추세”라며 “요즘 영어로 작성하는 거의 모든 계약서에 중재합의 조항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중재합의는 소송 권리를 포기하고 중재를 선택하는 것인 만큼 외국 기업이나 투자자와 계약서를 작성할 때 신중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일각에서는 한·미 FTA 발효 시 투자중재마저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ICSID에 제기된 투자중재 건수는 1999년 이전 매년 10건 이하에 머물렀으나 2000년 이후 20∼40건으로 늘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ISD 투자중재도 철저히 대비하면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몽골에 투자한 국내 A사가 몽골 정부를 상대로 ISD를 활용해 투자중재를 제기하겠다는 서한을 보내 몽골 정부와 합의를 이끌어 낸 사례에서 보듯 우리에게 순기능적 측면도 있다.
박노형 고려대 교수는 “ISD가 양날의 칼이라고는 하나 한·미 FTA 이전에 다른 조약에 이미 도입돼 있는 데다가 정부 정책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별기획취재팀= 박희준·신진호·조현일 기자 specials@segye.com
중재(Arbitration)
거래관계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정식 재판이 아니라 당사자 간 합의로 중재기관을 통해 해결하는 절차로, 판결과 똑같은 효력을 지닌다. 중재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없으면 당사자는 중재판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당사자 양측이 동의해야 법적 효력이 생기는 조정(Mediation)과 다르다.
투자자·국가소송제(ISD)
투자자가 상대방 국가의 정책으로 피해를 봤을 경우 중재기관에 제소할 수 있는 제도.
거래관계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정식 재판이 아니라 당사자 간 합의로 중재기관을 통해 해결하는 절차로, 판결과 똑같은 효력을 지닌다. 중재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없으면 당사자는 중재판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당사자 양측이 동의해야 법적 효력이 생기는 조정(Mediation)과 다르다.
투자자·국가소송제(ISD)
투자자가 상대방 국가의 정책으로 피해를 봤을 경우 중재기관에 제소할 수 있는 제도.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