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감별·임신중절수술 통해 둘째부턴 ‘아들 골라낳기’ 경향
셋째아 이상 성비 평균 146명…출생부터 ‘불균형 재앙’ 잉태 직장인 김모(37)씨는 얼마 전 퇴근길 택시 안에서 불쾌한 경험을 했다. “결혼은 했느냐”고 슬쩍 운을 뗀 운전기사는 “아니다”는 김씨 대답에 “젊고 예쁜 베트남, 라오스 처녀들을 알고 있다. 생각이 있으면 결혼정보회사와 연결시켜 주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가뜩이나 결혼 상대를 못 찾아 속상한데 난데없는 뚜쟁이 행태에 부아가 치밀었다”고 한다. 김씨처럼 혼기를 놓친 남성은 날로 늘고 있다. 출생 성비 불균형으로 결혼적령기 여성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 “내 짝이 없어요!”… 남성들의 아우성
신붓감 부족 사태는 이미 시작됐다. 3일 결혼정보 업계에 따르면 결혼정보업체에 등록된 남성 회원은 2007년 3만4700여명에서 작년에는 4만1000여명으로 늘어났다. 정식 회원으로 가입하지 않은 채 상담만 받는 남성까지 포함하면 실제 결혼정보회사를 통한 구혼 남성은 10만명이 훌쩍 넘을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 여성회원은 크게 늘지 않은 채 제자리걸음이다.
결혼정보업체 ㈜선우의 이웅진 대표는 “결혼을 원하는 남성은 많은데 상대적으로 여성은 적다”며 “만혼인 남성을 짝지어 주려 해도 결혼정보업체마다 여성이 적어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지난해 11월 20∼30대 미혼남녀 97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남성의 54.8%가 ‘그렇다’고 답했다. 여성은 38.6%에 그쳤다. 그만큼 남성이 결혼 의지가 강하다는 얘기다. 가뜩이나 신붓감이 부족한 상황에서 ‘싱글’을 추구하는 여성이 늘면서 결혼 성비 불균형은 심화되고 있다.
결혼 성비의 불균형은 바로 왜곡된 출생 성비(여아 100명당 남아 인구)에서 비롯됐다. 출생 성비는 1970∼80년대에 110명선을 넘나들다 1990년 116.5명으로 사상 최고에 이르렀다. 1996년까지 110명을 웃돌다 2003년부터 110명 아래로 낮아졌다. 사회의식 변화와 성감별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단속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출생 성비는 출산 순위에 따라 큰 차이를 드러낸다. 첫째 아이는 대개 남아든 여아든 가리지 않지만 둘째부터는 태아감별, 임신중절수술을 통해 남아를 골라 낳는 경향을 보인다. 1990년부터 지난해까지 첫째아 성비 평균 105.7명, 둘째아 성비 평균 108.7명으로 나타났다. 셋째아부터는 성비가 크게 치솟는다. 같은 기간 셋째아 이상의 성비는 평균 146.0명에 이른다. 1993년엔 207.2명이란 기록적 수치를 남겼다.
지역별로는 영남지방의 출생 성비가 다른 지역보다 높았다. 향후 이 지역 남성들이 다른 지역보다 더 심각한 신붓감 부족을 겪을 수밖에 없다. 1990년 경북의 출생아 성비는 130.7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대구와 경남도 각각 129.7명, 124.7명으로 전국 평균 116.5명을 웃돌았다.
◆시한폭탄 ‘결혼대란’
성비 불균형 문제는 ‘딸 바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많이 나아지긴 했다. 지난해 출생아 성비는 105.7명으로 ‘정상 수준’에 근접했다. 하지만 남성들의 신붓감 부족 현상은 쉽게 해소될 것 같지는 않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으로 초등학교 남학생은 163만5000명으로 여학생 149만8000명보다 13만7000명이 많다. 그만큼 여자 짝꿍이 없는 남학생이 많아 이들이 구혼활동을 시작하는 때가 되면 신붓감 부족이 현실화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결국 누적된 남초 인구가 저출산 인구구조와 맞물리면서 2015년 1차 ‘결혼대란’을 맞은 뒤 2031년엔 결혼적령기 남성이 여성보다 51만명이나 많은 최악의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장원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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