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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리뷰] 지구를 납 오염서 지킨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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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7-24 21:36:13 수정 : 2013-07-24 21:3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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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중 납 농도 높인 유연휘발유
패터슨 헌신 덕분에 판매 금지돼
얼마 전 중국에서 납 등 중금속으로 인한 환경오염으로 2010년 한 해 1개 구(區)나 1개 현(縣)에서 2000명 내외의 암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도됐다.

우리가 주유소에 가 보면 흔히 무연휘발유를 판매한다고 쓰여 있다. 사람들은 무심코 무연휘발유를 넣고 자리를 뜨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한 남자의 수십년간의 뜨거운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건의 시작은 오래전으로 돌아간다. 1921년 미국 오하이오주의 제너럴모터스(GM) 연구소에 근무하던 토머스 미즐리는 테트라에틸납을 연구하던 중 이 물질이 자동차 엔진의 노킹현상을 크게 줄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23년 제너럴모터스, 듀폰, 스탠더드오일은 에틸사를 설립해 독성이 약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납이라는 말을 일부러 빼고 ‘에틸’이라고 부르는 휘발유 첨가제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에틸사에게는 커다란 이익을 남겨줬지만 끔찍한 재앙을 불러일으켰다.

우선 에틸사 노동자 중 납중독 환자가 계속 발생했는데 1924년에는 5명이 사망하고, 35명이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장애인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는 철저히 부인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대표적인 독성물질인 납이 해롭지 않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는 동안 지구대기 중의 납 농도가 계속 높아졌지만 얼마나 높아지고 있는지 아무도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한편 1948년 클레어 패터슨이라는 시카고대학 박사과정생은 우라늄 동위원소의 반감기를 이용해 지구의 나이를 측정하려는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 우라늄이 납으로 변하기 때문에 그는 납과 우라늄의 양을 정밀하게 측정해야 했는데 대기 중의 납 때문에 시료가 오염돼 측정에 차질을 빚었다. 그는 처절한 노력 끝에 세계 최초의 청정실험실을 만든 후에야 측정에 성공했고, 1953년 지구의 나이를 45억5000만년이라고 확정해 밝힐 수 있었다.

어려운 과제를 해결한 패터슨은 대기 중 납에 관심을 갖게 됐고, 90% 이상이 자동차 배기가스에서 나올 것으로 생각했다. 대기 중 납의 농도가 유연휘발유를 사용한 후에 높아졌다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1923년 이전의 대기 중 납의 농도를 알아내야 했다. 그린란드와 같은 지역은 그해 내린 눈에 의해 얼음이 층층이 쌓이게 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해당되는 얼음의 층을 조사하면 그해 대기 중의 납 농도를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현대기후학 연구의 기초가 된 빙핵 연구의 시초다.

조사한 결과 놀랍게도 1923년 이전에는 대기 중에 납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유연휘발유가 판매되면서 대기 중 납의 농도가 높아져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게 된 패터슨은 휘발유에 납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일을 필생의 과업으로 생각하게 됐다. 그러나 그것이 패터슨에게 큰 고통을 안겨 줬다. 미국석유협회에서 지원해 주던 연구자금이 끊겼고, 에틸사의 경영자는 패터슨이 재직하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 패터슨을 해임하면 석좌교수직을 위한 기금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패터슨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에 1970년 청정대기법이 제정됐고, 1986년에는 미국에서 모든 유연 휘발유의 판매가 금지됐다. 그 후 미국인 혈액 내 납 농도는 80%가 감소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대기환경보전법 시행령에 의해 1993년 1월 1일부터는 무연휘발유만을 공급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름이 비록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패터슨처럼 인류를 위험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위대한 과학자가 있기에 지구는 여전히 살 만한 곳으로 남아 있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의사·가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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