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 비판 여론 모르쇠로 일관 ‘원점 재추진’ 결정이 난 차기전투기(F-X) 도입사업은 정부의 전략 부재로 공군 전력 공백 사태를 부른 ‘참사’로 기록될 것이다.
사업 추진 과정을 되짚어보면 예고된 참사였다. 고비 마다 경고음이 발동됐음에도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사업비’(8조3000억원)에만 매몰된 채 누가 뭐라든 제 갈 길을 가겠다는 행태를 보였다.
F-X 사업은 애당초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국방부와 공군은 지난해 1월 F-X 사업공고를 내기 이전부터 5세대 스텔스기 도입을 강력 주장했다. 군 요구성능(ROC)을 스텔스 성능에만 맞출 경우 F-X 후보기종 중 이를 충족하는 기종은 록히드마틴의 F-35A가 유일했다. 처음부터 정부가 F-35A를 점찍어 두고 F-X 사업을 설계했다는 얘기다.
이에 방사청은 사업 막바지까지 보잉의 F-15SE나 유럽항공우주방위산업(EADS)의 유로파이터도 함께 끌고 가야 한다는 논리로 ROC 제한선 완화를 요구했다. 경쟁 다변화를 통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는 명분을 내세웠고 공군도 이 논리를 수용했다. 하지만 정작 지난 8월16일 최종 가격입찰에서 F-15SE만이 유일하게 가격 제한선(8조3000억원)을 통과하자 군당국은 “스텔스기가 무적(無敵)은 아니다”며 슬그머니 말을 바꿨다. 각계의 비판 여론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역대 공군참모총장들의 건의도, 대통령 국방정책자문위원들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부실한 사업관리는 화를 키웠다.
2009년 당시 9조7000억원으로 편성됐던 F-X 예산은 2011년 8조3000억원으로 삭감됐다. F-35A의 가격을 1억달러 미만으로 제시한 국방연구원의 잘못된 분석 결과에 따른 것이었다. 이후 F-35A 개발이 지연되면서 대당 판매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국회 국방위까지 나서 예산부족 문제를 지적했지만 방사청은 사업을 강행했다. 그 결과 1차 가격입찰 마감 때까지 예산 범위내 가격을 써낸 업체는 단 한군데도 없었다. 가격 재입찰 때는 가격 제한선을 넘긴 기종은 무조건 탈락시키겠다고 공언, 경쟁에서 가장 뒤쳐졌던 F-15SE가 낙점되는 이변을 낳게 했다.
사업비를 F-X 사업의 절대 기준인양 떠받들었던 방사청의 행태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은, 북한 핵을 머리 위에 두고 있는 엄중한 현실은 사업비에 묶여있는 방사청의 근시안적 접근법이 통할 정도로 한가롭지 않다. 뒤늦게나마 국방부가 방사청의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은 것은 다행이나 그 때문에 초래된 공군 전력 공백 사태를 책임지겠다는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사업재추진 결정에 걱정이 앞서는 이유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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