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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는 삶 중요하듯 그림도 덜어내니 울림 만들어”

입력 : 2014-02-25 22:31:38 수정 : 2014-02-25 22: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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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일까지 ‘소묘:1985∼2014’展 여는 강요배 화백 어느 날 그는 작업실에서 음악을 들으며 명상에 잠겼다. 초원이 펼쳐지고 말이 그 위를 내달리고 있었다. 몇 해 전 가봤던 몽골 초원 풍경이었다. 그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일필휘지했다. 화폭엔 학이 날갯짓을 했다. 백마가 내달리는 바로 그 기세였다. 서울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오는 3월30일까지 열리는 ‘강요비 소묘: 1985∼2014’ 전에 출품된 작품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강요배(62) 작가는 아크릴화 4점을 빼고는 전부 드로잉작품만으로 전시를 구성한 배경에 대해 “이 시대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뭔지,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건지 고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설치, 영상, 사진작업 등이 넘쳐나는 시대에 그림 그리기의 본질 찾기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디지털 인쇄기법처럼 픽셀을 종합하듯 점묘 기법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몸으로 하는 맛이 사라지고 있어요. 그림은 한 번에 가는 맛이 있어야 합니다.” 그는 올림픽 경기에서 기계를 이용해 높이뛰기를 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몸의 한계, 실수, 그리고 도전에 스포츠의 매력이 있듯 그림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동양화의 선과 획을 살려나가야 합니다. 서양화의 터치는 점묘화로 이어지고 디지털의 픽셀로 고착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림이 자꾸만 콘셉추얼해지고 설명이 많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느낌이 설명을 따라가는 형국이지요.”

그는 삶에서도 덜어내는 것이 중요하듯 그림에서도 뺄셈이 울림을 만들어 낸다고 강조했다.

고향 제주에 터를 잡고 작업하고 있는 강요배 화백. 그는 “디지털시대의 그림의 미덕은 형태의 단순 전달보다 ‘뺄셈’을 통한 울림(기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요즘 그림에선 형상을 뭉개버린 듯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기운을 드러내고 형체를 지워나가고 있는 것이지요. 형태는 무수한 사실 중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본질이 아니지요.” 예를 들어 한 나무를 1m 거리에서 봤을 때와 10m 거리에서 봤을 때의 모습이 다르듯 무수한 형태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제가 형체를 지우는 게 아니라 다른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디지털카메라가 대중화된 시대에 형태라는 사실의 발견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그림이 할 수 있는 것은 전체 덩어리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는 제주 관덕정의 돌하르방을 스케치하면서 기운을 찾아가는 옛 석공의 ‘큰 마음’ 또는 ‘큰 느낌’을 읽을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추상화라는 것은 애매모호하게 하는 것이 아닌 명료화하기입니다. 다 빼고 ‘바로 이것’을 찾는 것이지요.” 그는 대상에 종이 되는 것을 경계했다.

“나를 휘감고 있는 형태에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복싱선수처럼 대상을 녹다운시켜 빼앗아 올 것만 빼와야 합니다.” 이른바 ‘강도 화법’이다. 건축가 반데로이는 “덜어내는 것이 더 많다”고 했다. 어떻게 덜어내나, 이것이 추상화 과정이다.

“의미마저도 골라잡는 시대라 창의적 생산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권력, 화폐, 사랑, 예술 등으로 시스템화된 사회에서 예술이 혁명을 일으켜 사회를 바꾸겠다는 생각은 이미 구시대적 발상입니다. ‘이석기’ 사태도 같은 맥락이지요.” 민중미술을 이끌었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 더욱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제 우리 사회도 더 이상 단순한 개인의 집합이 사회를 이루는 단계를 넘어선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사회를 구성하는 시대가 됐다는 얘기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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