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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스토리] 이민 아닌 한국 포기… 글로벌시대 흔들리는 뿌리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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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2-28 20:00:18 수정 : 2014-03-01 1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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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영주권자 상당수 현지 생활 정착, 2013년 1만6782명 美·日·加 국적 취득
남성 비율 높아 병역 문제 큰 이유 꼽혀
“국경 초월시대… 국가주의 고집 안 돼”
‘나는 자발적으로 내 자신의 의지로 어떤 압력이나 부당한 위압 없이 대한민국 국적을 이탈한다.’ 대한민국 ‘국적 이탈 신고 사유서’ 끄트머리엔 이 같은 선언적 문장이 적혀 있다. 여기에 본인 서명을 해야만 국적 포기 절차가 진행된다. 국적 포기가 전적으로 본인 뜻에 따른 선택인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계속 남길 권하는 간절한 회유가 여기에 담긴 것도 당연지사다. 하지만 이런 엄숙한 만류를 뿌리치고 대한민국과 ‘작별’한 국민이 지난해에만 2만90명에 달했다. 단순히 다른 나라에서의 삶을 꿈꾼다면 국적을 유지한 상태에서 살고 싶은 나라를 골라 이주(이민) 신고를 한 뒤 그곳에서 살 수 있지만 이들은 기꺼이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했다. 조상이 물려준 국적을 포기할 만큼 강렬한 동기가 이들에겐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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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터전’이 달라졌다

국적 포기자들이 선택한 ‘두 번째 조국’의 면모를 살펴보면 그 이유가 어느 정도 드러난다.

28일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국적 이탈·상실자 가운데 절반이 넘는 1만460명이 미국을 택했다. 이어 일본 3587명, 캐나다 2735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전체 국적 이탈·상실자 가운데 이들 세 나라를 택한 사람(1만6782명)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83.5%다. 지난해 대한민국 국적포기자 10명 중 8명 이상이 미국·일본·캐나다 국민이 됐다는 얘기다.

세 나라 쏠림 현상은 지난해만의 일이 아니었다. 2008∼2012년 5년간 통계를 봐도 전체 국적 이탈·상실자 10만5788명 가운데 87.3%에 달하는 9만2381명이 미국·일본·캐나다를 선택했다. 미국이 4만6971명으로 가장 많았고, 일본(2만9881명), 캐나다(1만5529명)가 그 뒤를 이었다.

이 같은 결과는 우리나라 해외 이민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외교부의 재외동포 현황을 보면 대한민국 국적을 지닌 외국 영주권자는 지난해 말 현재 112만2161명이다. 나라별로는 미국이 46만5916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 일본(44만2790명), 캐나다(5만7017명) 순이었다. 이들 중 취업 등을 위해 대한민국으로 다시 들어와 거소 신고를 한 경우는 지난해 6월 현재 전체의 10%도 안 되는 7만1000여명에 그쳤다.

이들 통계를 종합해 볼 때 미국 등 세 나라로 국적을 바꾼 이들의 ‘삶의 터전’은 이미 대한민국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이들 세 나라 해외 영주권자 상당수가 현지에 ‘뿌리’를 내려 이미 정착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유추가 가능한 것이다. 사실상 이들에게 ‘모국’인 한국에서의 생활은 오히려 ‘타향살이’와 다름없는 새출발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국적 선택을 요구할 때 이들이 한국 국적 포기를 선택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 판단으로 보인다.

◆군대도 국적 포기 이유

국적법상 국적 선택 절차에서도 이들의 국적 포기 동기를 찾을 수 있다.

국적법에 따르면 복수 국적자의 경우 일정한 때가 되면 의무적으로 국적 유지 여부를 신고해야 한다. 20세 전에 복수 국적자가 된 경우엔 만 22세가 되기 전까지, 20세가 된 후에 복수 국적자가 된 경우엔 그로부터 2년 이내가 신고 기간이다. 단 병역 의무가 있는 남자는 제1국민역에 편입된 때부터 3개월 이내(만 18세가 되는 해의 3월 말)에 신고해야 한다.

그런데 복수 국적자 중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겠다고 밝힌 국적 이탈자 통계를 보면 남성의 비율이 여성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법무부가 2002∼2009년 7월 말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 기간 국적 이탈자는 총 8154명이며 이 가운데 남성이 무려 7061명에 달했다. 국적 이탈을 신고한 10명 가운데 9명이 남성이었던 것이다.

국적을 포기하는 강력한 동기 중 하나가 군대 문제일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한 이유다. 특히 부모의 외국 생활 도중 현지에서 태어난 덕에 외국 국적을 자연스레 얻으면서 복수 국적을 갖게 된 경우에서 주로 이 같은 사례가 발견된다.

재외 동포들은 거주 국가의 문화적 특성을 감안해 어쩔 수 없이 국적을 포기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주로 결혼과 학업, 사업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히고설켜 있는 경우다.

재일본한국인연합회 정용수(48) 사무총장은 “일본의 경우엔 몇 세대를 거쳐 교포들이 생겨났고 현지에서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경우도 많아 사실상 일본화한 동포가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일본 사회 안착은 누구나 바라는 일이고 한국 국적 포기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외 동포 관계자는 “우리 민족의 정서상 국적 포기 문제는 곧장 애국심 결여로 연관되는 분위기여서 여러 가지로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며 “다만 국경을 초월하는 시대에 살면서 전통적 의미의 국적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준모·김민순 기자 jm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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