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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스토리] 기억해야 할 치욕의 흔적… 대한민국 역사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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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3-15 06:00:00 수정 : 2014-03-15 19: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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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한센인들은 정관 수술과 시체 해부를 당했다. 유족의 의사와 상관없이 검시 절차를 마쳐야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고, 시신은 화장터에서 처리됐다. 일제의 끔찍한 만행에 죽어서도 통곡해야 했을 한센인의 깊은 슬픔이 깃든 곳이 전남 고흥의 ‘구 소록도갱생원 검시실’이다. 등록문화재 66호로 관리되고 있다. 검시실이 전하는 역사가 끔찍하다고 해서 지워버릴 순 없다. 재연되어서는 안 될 아픔으로 기억해 경계해야 하고, 만행을 증언하는 것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 ‘네거티브 문화재’의 역할이다. 근·현대기에 형성된 유물이 대상인 등록문화재 중에는 일제강점, 한국전쟁의 치욕과 아픔을 간직한 것들이 꽤 있다. 반면 시련의 시절에 이룬 값진 발전과 성과, 저력을 증언하는 것들도 많다. 등록문화재가 전하는 대한민국사(史)의 ‘빛과 그림자’는 짙다.


‘구 소록도갱생원 검시실’은 한센병 환자에게 가해진 일제의 만행을 증언하는 곳이다.
◆무엇을 증언하는가


제주도 곳곳에는 일제가 만든 동굴진지가 있다. ‘사라봉 동굴진지’는 연합군이 북부 해안으로 상륙할 경우에 대비해 만들었다. 태평양전쟁 말기 수세에 몰린 일본군이 제주도를 저항기지로 삼았던 침략의 역사를 보여준다. 경남 창원시 ‘구 마산헌병 분견대’ 건물은 헌병대가 민중을 억압하고 독립투사들에게 가혹행위를 자행했던 곳이다. 전북 완주의 ‘구 삼례양곡창고’는 1920년대에 건립된 쌀 보관창고다. 곡창 호남평야의 쌀 수탈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증거물이다.

6·25전쟁의 비극을 보여주는 등록문화재도 많다. ‘노근리 쌍굴다리’에서는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다. 1950년 7월 후퇴하던 미군은 쌍굴다리에 피신 중이던 주민들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해 300여명을 죽였다. 지금도 총탄 흔적이 생생하다. 강원도 철원의 ‘수도국 터 급수탑’은 1950년 10월 도주하던 북한군이 반공인사 300여명을 총살 혹은 물탱크에 생매장한 현장이다. 북쪽 부분은 북한이, 남쪽은 남한이 공사를 맡아 한 다리임에도 외관상 구별이 될 정도로 다르게 건설한 ‘철원 승일교’는 분단을 극적으로 상징한다. 

‘노근리 쌍굴다리’는 한국전쟁기의 민간인 학살 현장이다. 전쟁의 참화 속에 죄 없는 사람들이 무자비한 폭력에 희생된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수도국 터 급수탑’은 한국전쟁기의 민간인 학살 현장이다. 전쟁의 참화 속에 죄 없는 사람들이 무자비한 폭력에 희생된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치욕적이고 끔찍한 역사를 전하는 문화재들은 한때 없애야 할 대상으로 인식됐다. 1995년 철거된 ‘조선총독부 청사’가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문화재의 가치에 주목하는 경향이 강하다. 내부적으로는 힘이 없으면 다시 이런 일을 당할 수 있음을 상기시킬 수 있다. 가해자의 악행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유물이 되기도 한다. 일제 관련 유물은 침략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의 최근 행태를 반박하는 증거다. 유대인들이 나치의 홀로코스트 관련 문화재를 적극적으로 보호, 활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동아대 건축학과 김기수 교수는 “네거티브 문화재는 아픈 역사를 드러내 재연되지 않도록 경계를 삼기 위해 활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 시절의 값진 성취를 기억하는 유물은 많다. 일제강점기의 스포츠 영웅인 엄복동의 자전거, 한국계 미국인으로 전쟁 직후 미8군에서 근무하며 한국 다이빙 선수를 지도했던 새미 리의 수영복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최초의 양산형 고유 모델 자동차 ‘포니’, 1966∼80년까지 철제조에 쓰인 ‘전기로’ 등은 1960∼70년대 경제 발전상이 반영된 유물이다. 

제주도의 ‘사라봉 동굴진지’의 1차 대전 말기 수세에 몰린 일본군이 제주도를 저항기지로 삼으려 했던 사실을 전한다.
최근에는 한국, 한국인의 세계적 위상과 저력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예비문화재’로 지정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김연아의 스케이트, 박세리의 골프채,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에게 보급된 한글교재 등이 대상으로 거론된다. 예비문화재 도입을 골자로 새누리당 이상일 의원이 대표발의한 ‘문화재보호법 일부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누구를 기억하는가

등록문화재 587건 중 33건이 ‘인물기념시설’로 분류된다. 문화계의 선각자와 독립투사의 집과 묘지가 많다. 고희동, 박종화, 최순우, 이준, 안창호, 한용운 등을 꼽을 수 있다. 정치인 중에는 1∼4공화국 최고권력자인 이승만 전 대통령, 장면 전 총리, 박정희·최규하 전 대통령의 집이 포함됐다.

문화재명에 인명이 쓰인 사례까지 포함하면 80건이 넘는다. 해당 문화재가 반드시 이름의 주인을 기념하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문화재명을 통해 존재가 부각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역시 문화·체육계 인사와 독립투사들이 다수다.

친일인물과 관련된 등록문화재가 꽤 있다는 점은 논란의 대상이다. 이광수의 별장터, 일제 말 군국주의 경향의 삽화를 그린 이상범의 집, 일제 지원병을 홍보한 최인규 연출의 영화 ‘자유만세’ 등이 해당된다. 문화재청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과 관련된 등록문화재가 21건이라고 밝혔다.

친일인물 관련 유물의 등록이 가능한 것은 ‘문화예술인의 도시형 한옥건물’(이상범 가옥), ‘광복 직후 영화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참여한 본격 극영화’(자유만세) 등과 같이 해당 유물의 문화재적 가치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문화재는 일단 훼손되거나 없어지면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일단 등록해 보호해야 한다. 나중에 폭넓은 여론을 수렴해 정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등록을 취소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화재가 지닌 역사성이 중요하다는 반론이 강하다. 지난해 8월 의복사적인 가치는 인정되나 착용자의 친일행위가 문제가 돼 민철훈 대례복, 백선엽 군복, 윤웅렬 일가 유물 등의 등록이 보류됐다. 

이광수의 별장은 등록문화재 87호로 올라 있다. 이광수 외에도 다수의 친일 인물과 관련된 유물이 등록돼 보호 중인데, 문화재의 역사성을 감안할 때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문화재청 제공
친일인물 관련 유물이라는 점은 같은 데 등록 여부가 갈린다는 것은 심사에 분명한 원칙이 없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독립기념관 김용달 수석연구위원은 “후손에게 물려주고, 민족정기를 선양해야 한 문화재는 역사성이 중요하다. 친일파 관련 문화재를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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