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감찰서 적발하고도 쉬쉬
청와대 비서실 간부가 관계 부처로부터 법인카드를 건네받아 활동비로 써온 사실이 청와대 내부 감찰을 통해 적발된 것으로 확인됐다. 행정부 안에서 기관 간에 노골적인 ‘스폰서’ 관행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청와대는 실무자를 원 부처로 돌려보냈을 뿐 책임자에 대해서는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일 정부에 따르면 청와대 민정수석실(공직기강팀)은 지난해 10월 미래전략수석 산하 기후환경비서관실 A선임행정관(3급·이하 국장)의 비위 의혹을 조사하던 중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해 5월 청와대로 파견 간 A국장에게 직속상사인 B비서관(1급)이 “사람들을 만나려면 필요할 테니 쓰라”는 취지의 설명과 함께 법인카드 한 장을 건넨 것이다. 발급 기관은 해당 비서관실을 ‘갑’으로 모셔야 할 환경부였다. A국장은 이 카드를 받아 총 165만5100원을 사용했다. A국장은 세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적절한 일인지 미처 따져볼 생각을 못했다”며 “청와대 근무 경험이 없어 그런 줄로만 알았다”고 말했다. ‘관행’으로 여긴 셈이다. 청와대는 비서관부터 법인카드가 제공된다.
민정수석실은 적발 이후 청와대 최고위층에 ‘B비서관은 환경부에 근거 없이 카드를 요구한 책임이 인정된다’며 ‘경고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환경부에 대해서는 ‘정부 법인카드 교부 및 관리 경위를 확인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이후 B비서관에 대해 어떤 징계가 따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고, A국장은 다른 비위 사실들에 대한 책임을 함께 물어 원복 조처됐다. 청와대 비서관은 1급 공무원이지만 인사검증 등에서 차관급에 준해 처리된다. B비서관은 이날 전화와 문자메시지에 일절 답하지 않았다. 이민호 환경부 대변인은 사실 확인 요청에 “모르는 내용”이라고만 했다.
이에 대해 감사원 측은 “어떤 변명으로도 설명이 안 될 일”이라며 “책임자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잘라 말했다. 안행부 관계자도 “이런 일은 관련 규정도 없다”며 혀를 찼다. 한 부처 관계자는 “식사비 대납 등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법인카드 제공 정도라면 최고위층에서 처리될 일이라 외부에 알려지기 힘들다”고 말했다.
조현일 기자 con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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