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아침 세월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활기찼다. 초등학생 때부터 어울리던 친구 3명과 세월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송지철(19)군은 3층 식당으로 향했다. 송군은 여객선이 인천과 제주를 왕복하는 기간 내 편의점을 관리하고 식사 시간에 배식하는 일을 맡았다.
오전 7시가 되자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밀물처럼 들이닥쳤다. 송군과 친구인 오의준(19)군이 나눠준 음식을 받아 식사를 마친 학생들은 선실과 로비로 뿔뿔이 흩어졌다. 곧 제주도에 도착한다는 생각에 들떴는지 학생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식당 너머로 들려왔다. 송군도 빨리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는 제주도 도착을 기다렸다.
오전 8시쯤 배가 살짝 흔들렸다. 식당에 있던 쓰레기통이 배 왼쪽으로 미끄러졌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일렁이는 파도에 배가 조금 흔들리는 정도로 알았기 때문이다. 물체에 부딪히는 ‘쿵’ 하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학생들이 빠져나간 식당은 한산했다. 오군은 사무실에 다녀오기 위해 4층으로 올라갔다. 식당에는 송군과 청해진해운 사무장, 주방 아주머니, 그리고 뒤늦게 식사를 시작한 여교사 2∼3명뿐이었다.
그렇게 50분쯤 지났을까. 송군의 발목에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바닷물이었다. 미처 상황을 파악할 틈도 없이 배가 급격히 기울었다. 차가운 물은 1분도 채 되지 않아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순식간에 활기찬 아침 공간이 아비규환의 장으로 전락했다. 식당 밖에서 학생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살려주세요!” 긴박한 구조요청에 아랑곳없이 스피커는 느리게 반응했다. “위험하니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식당에서 물이 차오를 당시 세월호의 승무원은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에 무선으로 긴급구조를 요청하고 있었다. 세월호는 오전 8시55분부터 10분간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와 교신을 주고받았다.
“해경에 연락해 주십시오. 본선 위험합니다! 지금 배 넘어갑니다!”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가 해경에 신고하는 1분 사이에 세월호의 상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들었다. 배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물이 차 오르는 순간, 옆에 있던 사무장이 곧바로 배 측면에 있는 환기구의 핀을 뽑고 뚜껑을 열어젖혔다. 이미 배가 심하게 기운 탓에 환기구는 송군 머리 위에 있었다. 송군은 조그만 환기구 구멍으로 몸을 비집고 가까스로 밖으로 빠져나갔다.
어선 한 척이 눈에 들어왔다. 배 밖으로 뻗은 어부의 손을 붙잡고 송군은 배 위로 올라가 참았던 숨을 터뜨렸다. 그제야 대형사고가 났음을 실감했다.
송군을 태운 민간 어선은 6명을 더 구조한 뒤 오전 11시쯤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도착했다. 송군은 땅을 밟자마자 정신없이 한 중년 남성에게서 휴대전화를 빌려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온몸이 젖어 오들오들 떨면서도 송군은 “전 괜찮아요”라는 말로 어머니를 진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송군은 목포 한국병원에 이송됐다.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친구 오군이 해남 한국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확인했다. 휴대전화가 없어 서로 연락할 수는 없었지만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전날 밤 당직근무를 한 뒤 숙직실에서 자고 있던 친구 방현수(19)군과 이현우(19)군의 생사 소식은 하루가 넘도록 들리지 않고 있다. 이틀째 송군은 텔레비전 화면만 바라보고 있다.
목포=권이선 기자, 세종=박찬준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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