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예운전 전방도로엔 가드레일을
열악한 복무환경부터 바꿔나가야

지난 7월30일 방문한 중부전선 ○○사단 전망대(해발 876m)에서 모 사단장은 “이곳이 북한군 지역보다 유일하게 지대가 높다”고 강조한 뒤 “사단 철책을 따라 설치된 이동로 계단 수를 모두 합치면 1만2703개로, 높이 249m의 63빌딩 계단(1251개)의 열 배”라고 설명했다.
GOP(일반전초)를 향해 길게 늘어선 가파른 계단이 시야에 들어왔다. 통상 GOP 철책선 이동 계단의 경사는 15도에서 45도에 달한다. 산악지형인 탓에 경사가 가파른 곳이 적지 않다. 계단 폭은 평균 35㎝지만 40∼50㎝가 넘는 곳이 부지기수다. 일반 건물의 계단 폭은 대체로 18㎝가량이다. 이런 계단을 하루에도 몇 차례씩 오르내리는 일이 신참 병사들에겐 유격훈련보다 더한 고통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연예병사를 마다하고 이 부대 철책 경계병으로 근무했던 영화배우 원빈은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조기전역했다.
GP(전방초소)로 이동하기 위해 GOP 철책 통문 앞에서 군복 상의에 방탄조끼를 걸쳤다. 숨이 머리 꼭대기까지 차올랐다. 방탄조끼를 30여분 착용했을 뿐인데 목 주위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땀으로 범벅이 된 방탄조끼를 제때 세척하지 않아 세균이 생긴 탓이다.

22사단 총기 사고와 28사단 윤 일병 폭행사망 사건으로 군이 후속대책 마련에 혈안이다.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는 지난 25일 대책안을 논의한 끝에 부대·부모·병사 간 24시간 소통 등 4개의 연내 시행 단기과제를 채택했다. 부모와 병사 간 24시간 소통이 가능해지면 군내 구타 및 가혹 행위를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와 동시에 병사들이 군 복무 기간 내내 힘들어하고 고통받는 요인을 제거해주는 것도 병영문화 개선 방안에 포함돼야 할 것이다. 직접 전방부대를 찾아 병사들의 복무환경을 살펴본 뒤, 전방 사단 철책 계단 평탄화 작업과 격오지 도로 포장, 가드레일 설치 같은 조치야말로 병사들의 피부에 와닿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GOP 철책 제초작업과 제설작업을 민간에 아웃소싱(외주)하는 방안도 그럴 것이다. 전방 부대 병사들과 지휘관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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