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추기 위해 높이 뛰는 동작을 의미하는 ‘그랑 주떼’는 말 그대로 깊은 상처의 늪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훨훨 날기를 소망하는 상징적인 제목이다. 소설의 화자 ‘서예정’은 불과 여덟 살에 ‘도와 달라’며 접근한 아저씨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오히려 죄의식에 사로잡혀 살아온 여성이다. 그 아저씨 말고도 사촌 오빠까지 몸을 더듬었지만 주변에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다그칠 뿐이다. 예정은 태어나자마자 뇌척수막염을 앓아 왼쪽 눈동자가 반쯤 돌아가는 바람에 사시 증상을 보인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왕따를 당하는 처지였다.
콤플렉스였던 넓고 높은 발등이 발레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부러운 신체조건이라는 사실은 뒤늦게 알았다. 춤을 시작해 보지만 굳어버린 관절로 단순 동작만 반복할 뿐이다. 미운 오리새끼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너무 늦게 발견한 까닭이다. 예정이 유일하게 정을 주었던 발레리나 친구 리나는 정작 “너랑 있으면 아주 따스하고 평화로운 물속에 잠겨 있는 것만 같고 이 모든 세계가 나를 안아주는 것만 같았다”면서 “너에게 자꾸만 상처 내지 않았으면, 너를 좀 더 예뻐해주면 좋겠어”라고 호소하지만 그 친구에게서마저 상처가 두려워 먼저 떠났을 따름이다. 이 여성은 정작 아이들에게서 빛을 발견한다. 모두 저마다의 빛을 지니고 있는 아이들은 그 빛을 감추거나 숨기는 법을 알지 못했다고 작가는 적는다.
모두가 저마다의 빛으로 홀연히 빛나는 모습을 보면서 그제야 예나는 ‘그랑 주떼’에 도전한다. 자신의 아픔을 녹여냈다는 김혜나는 “이 소설이 보다 많은 이들의 내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도서출판 은행나무가 300∼400장 분량 중편소설을 가벼운 단행본으로 내는 ‘노벨라’ 시리즈의 두 번째 소설이다. 영화 한 편 보는 시간에 너끈히 읽어낼 만한 젊은 소설을 지향하는, 흥미로운 실험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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