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춤을 추기 위해 높이 뛰는 동작을 의미하는 ‘그랑 주떼’는 말 그대로 깊은 상처의 늪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훨훨 날기를 소망하는 상징적인 제목이다. 소설의 화자 ‘서예정’은 불과 여덟 살에 ‘도와 달라’며 접근한 아저씨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오히려 죄의식에 사로잡혀 살아온 여성이다. 그 아저씨 말고도 사촌 오빠까지 몸을 더듬었지만 주변에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다그칠 뿐이다. 예정은 태어나자마자 뇌척수막염을 앓아 왼쪽 눈동자가 반쯤 돌아가는 바람에 사시 증상을 보인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왕따를 당하는 처지였다.

모두가 저마다의 빛으로 홀연히 빛나는 모습을 보면서 그제야 예나는 ‘그랑 주떼’에 도전한다. 자신의 아픔을 녹여냈다는 김혜나는 “이 소설이 보다 많은 이들의 내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도서출판 은행나무가 300∼400장 분량 중편소설을 가벼운 단행본으로 내는 ‘노벨라’ 시리즈의 두 번째 소설이다. 영화 한 편 보는 시간에 너끈히 읽어낼 만한 젊은 소설을 지향하는, 흥미로운 실험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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