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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검시 리포트] 죽은자의 권리, 산자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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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9-17 19:26:13 수정 : 2014-09-18 11: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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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째 이야기하고 있는데 바뀐 게 없습니다. 검·경 수사권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검시 문제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김형석 대한법의학회 총무이사) 검·경이 검시체계 개선 작업에 나서고 관련법 개정안도 발의됐지만 이를 바라보는 법의학계의 시선은 차갑다. 정치권이나 정부의 진짜 속내는 검시제도에 대한 관심도, 개선 의지도 없다는 것이다. 역대 검시제도 개선 작업이 별다른 성과 없이 번번이 무산된 과정을 살펴보면 법의학계의 이 같은 냉소는 이해가 간다.

검시제도 개선 논의는 1960년대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본격적인 건 2000년대 초반 의문사 문제가 불거지면서다. 2002년 당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건의로 법무부에서 개선 방안까지 내놨으나 유야무야됐다. 2005년 17대 국회 당시에는 윤호중 의원이 검시 대상을 법으로 정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유시민 의원도 각계 의견을 모아 검시법 초안을 만들었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유 전 의원의 검시법 초안 폐기는 법의학계가 두고두고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유 전 의원은 “검찰, 경찰,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 관련기관 실무자들과 10여회 협의를 거쳐 합의로 만든 이 법률안이 법사위에서 아무 합당한 이유도 없이 의결을 거부당했다”고 밝혔다.

이명박정부에서는 2008년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검시제도 개선 기획조사 및 공청회 등을 통해 제도 개선을 추진했다. 구체적 방안까지 청와대에 보고됐으나 이 역시 흐지부지됐다. 

검시체계 개선작업이 번번이 무산된 배경에는 검시권을 수사권과 결부시킨 검·경 간 갈등이 놓여 있다. 권익위 검시체계 개선 작업에 참여했던 김헌진 전 권익위 전문위원은 “청와대에 보고를 들어가서 마무리지으려고 했던 부분인데 (청와대내에서조차 부처 파견 비서관 간에) 조율이 계속 안됐다”고 말했다. 그는 “각 기관 입장에서 생각할 게 아니라 국민 입장에서 문제를 풀어야만 해결책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검시체계 개선 작업에는 이처럼 법무부와 검찰,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법의학계 등 여러 조직이 얽혀 있는 만큼 범부처 차원의 총리 또는 사회부총리 산하 위원회 신설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박종태 대한법의학회장은 “예전 학회 차원에서 정리된 내용은 총리 산하에 검시위원회를 두고 그 위원회가 검시를 관리하는 것”이라며 “변사체가 발생하면 경찰이 법의관한테 신고해 현장 출동하도록 하는데, 일단 (인력을 차차 충원하면서) 시행 가능한 지역부터 하고 점차 확대하자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도 “검시위나 검시를 총괄하는 조직을 만들어 현장 검안 의사부터 검안 자격 등을 관리해야 한다”며 “넓게는 의과대에 법의학교실 설치를 의무화하고 의사고시에도 법의학 과목을 넣는 등 법의 양성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안은 부처 간 권한 갈등에 휩싸일 가능성도 크다. 한 법의학자는 “총리실 소속 검시위를 만들자고 하면 기관 권한 싸움이 시작돼 개선 작업이 난관에 부닥친다”며 “형사소송법 어디에도 의사 얘기는 없는데 형사소송법 혹은 규칙에라도 ‘이러이러한 경우는 법의관의 검시를 받아 처리하라’고만 넣어도 굉장한 진전이 있을 듯하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는 검사 판단에만 맡겨 놓은 검시 대상 일부를 ‘수용시설 내 사망사건’ 등 일정 상황에는 무조건 검시하도록 법에 정해 놓는 방안이 시급하다. 검안서를 모든 의사가 쓸 수 있도록 돼 있어 부실한 검안서가 쏟아지는 현실도 고쳐야 한다. 법의학자만 검안서를 쓰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법의학자가 부족해 당장 어렵다면 검안서 작성 교육을 따로 받은 의사만이 검안서를 쓰도록 해야 한다. 

경찰은 검시권을 검찰이 갖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내부적으로 가능한 방안을 모은 것이 지난 13일 발표한 ‘변사사건 개선 종합대책’이었다. 임상병리학·간호학 등을 전공한 경찰검시관을 대폭 늘리고, 검안 경험이 많고 현장에 출동할 수 있는 일반 임상의사들로 인력풀을 꾸려 현장 검안을 강화겠다는 것이 요지이다.

그러나 여전히 법의전문의사들을 활용하는 데는 소극적이다. 현장 검안의 인력풀에 민간 법의학자 9명을 포함했지만, 경찰 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민간 법의학자와 적극적인 공조체제를 구축한 부산·울산은 만족도가 높은 반면에 다른 지역에서는 “공적인 수사 영역에 민간 법의학자를 개입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공조를 꺼려 왔다.

민간 법의학자와 경찰의 공조체계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국과수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소수의 믿을 만한 법의학자들이 활동하지만 나중에는 하나의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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