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장 말 한마디가 곧 '法'…점심메뉴 선택권? "당연히 상사에게 있죠"
#1. 대기업에 입사한 지 3년째인 이모(30)씨는 입사 이후 가장 놀란 점으로 ‘군대보다 더 심한 상명하복 분위기’를 꼽았다. 이씨는 “팀장이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하면 팀원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따라 나서고, 조금이라도 머뭇거릴 경우 선배의 불호령이 떨어진다”며 “막내들은 재빨리 차를 준비해 팀장을 모셔야 하고, 식사메뉴 선택권은 당연히 팀장에게 있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도 조직이니까 어느 정도 위계질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팀장의 말 한마디가 곧 법이 되는 분위기에 놀랐다”고 덧붙였다.
#2. 직장인 김모(31)씨는 연말 송년회식 자리에서 때아닌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김씨는 당시 회식 자리가 시끄러워서 '너는 부서 막내이니 끝자리에 앉아라'는 부서장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잠시 주춤했다. 그러자 그 부서장은 "중역이 말하는데 집중 안 하는 건 범죄야, XX야"라고 막말했다. 이후 부서장은 2~3차 술자리에서도 계속 김씨를 죄인 취급했다. 김씨는 “며칠이 지난 지금도 그 막말을 떠올리면 당장에라도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푸념했다.
#3.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최모(32)씨는 회사 대표로부터 ‘개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 당시 최씨가 속한 팀이 실수하자 회사 대표는 팀 사무실로 와 칸막이에 턱을 괴고는 "이 XX야 왜 말을 못 알아먹어. 우리 집에 있는 개도 너보다 말을 잘 들어"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최씨는 “이런 말을 들으면서까지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4. 메이저 공기업에 다니는 박모(38)씨는 '악질 상사'만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이 상사는 부하 직원들에게 '개XX', '병신XX'라고 욕하는 것은 기본이고, 자리에 없으면 자신의 상사에게도 서슴없이 욕한다. 박씨는 "나한테 욕하는 것도 기분이 나쁘지만, 다른 사람들한테 욕하는 것을 듣는 것도 불안한 느낌이 든다"고 밝혔다.
◆ 10명 중 7명 "상사 비위 맞춘다"…'군대식 문화' 바꾸어야 할 0순위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상사가 부당한 지시를 해도 그대로 따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직장문화 중 가장 바뀌어야 할 것으론 권위적인 군대식 문화를 0순위로 손꼽았다.
최근 세계일보와 취업 포털 잡코리아의 공동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들은 ‘상사가 비효율적이거나 부당한 지시를 했을 때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에 68.4%가 ‘그대로 따른다’고 답했다. ‘억지로 아부를 하는 등 상사의 비위를 맞추려 노력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63.2%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즉, 10명 가운데 7명 가량이 상사가 시키는 대로 하면서 기분까지 살피고 있는 셈이다. 이번 조사에서 ‘한국의 직장문화 중 가장 바뀌어야 할 점’으로는 ‘권위적인 분위기(군대식 문화)’(36.9%)를 0순위로 꼽았다.
◆ 툭하면 야근, 일 없으면 회식…건강 '적신호'
직장생활 7년차인 김모(35)씨는 입사 이후 체중이 17㎏나 늘었다. 김씨는 “야근을 할 때마다 먹었던 야식과 회식에서 들이켰던 술이 문제였다”고 전했다. 그는 조금 일찍 퇴근하는 수요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야근을 하다 보니 건강에 적신호가 올 수밖에 없다.
이번 설문에서도 주 3회 이상 야근을 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34.3%에 달했다. 야근을 하는 이유로는 49.2%가 ‘과다한 업무’를 꼽았다. 이어 25.2%가 ‘상사의 눈치 때문’이라고 답했다. 회식의 경우 주 1회가 76.7%로 가장 많았고, 주 2회라고 답한 사람은 15.7%였다. 회식과 야근이 잦으면서 ‘늦은 퇴근’이 일상화된 셈이다.

이런 탓에 독서 등 자기계발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조사 대상 직장인 가운데 71.3%가 ‘평일에 여가생활을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잦은 회식과 야근에 시달리는 김씨는 매일 만성피로와 싸운다. 얼마 전 정기 건강검진에서는 고혈압을 조심하라는 말을 들었다. 조사 결과 ‘입사 후 건강상태가 나빠졌다’고 응답한 사람이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이었다. 김씨와 같은 삶이 대다수 직장인의 모습인 것이다.
◆ "시키면 다 한다"…'상사=회사'
한국 직장인의 평균 행복 수준은 100점을 만점으로 봤을 때 55점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수우미양가’로 따지면 ‘가’에 해당하는 점수다. 한 경제연구소는 최근 ‘직장인의 행복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조사 내용을 소개했다. 보고서는 올 4월 직장인 849명을 대상으로 벌인 온라인 조사 결과를 분석했다.
업무 의미감, 상사·동료와의 관계, 심리 상태 등 직장생활 요인과 경제적 상황·기부·가족관계 등 일상생활 요인 총 16개를 통해 분석한 결과 한국 직장인의 행복은 100점 만점 기준에 55점이었다. 연령대별로는 20대가 48점으로 가장 낮았다. ▲30대가 53점 ▲40대가 56점 ▲50∼55세가 61점으로 연령대가 높을수록 행복 수준도 높아졌다.
직장인의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즐거움과 편안함, 웃음 등 ‘긍정 감성’이었다. 다음으로는 ‘업무 의미감’, ‘조직·상사의 지원’ 순이었다. 긍정 감성을 자주 느끼고, 자신의 업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조직의 탄탄한 지원 아래 리더십 있는 상사와 일하는 직장인일수록 행복하다는 것이다. 직장에 업무관계를 넘어 친밀하고 믿을 수 있는 친구가 존재하고, 회사에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을 때에도 행복 수준이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이 평균적으로 ‘삶 전반에서 느끼는 행복’은 64점인 데 비해 ‘직장생활에서 느끼는 행복’은 55점으로 낮았다. 직장인이 회사에서는 행복감이 떨어지는 것이다. 직장인의 평균 ‘이직의도’는 49점이었다.
◆ "가족·애인 때문에 오늘도 버텨요~!"
월급쟁이들은 하루하루가 고달프지만 꿋꿋하게 버틴다. 입사할 때 지녔던 꿈과 나로 인해 행복해하는 가족 등이 그 원동력이다. 인기 웹툰 ‘미생’의 주인공인 계약직 장그래의 삶을 지켜보는 직장인들의 댓글 중에는 “신입사원 때 품었던 꿈이 되살아났다”, “회사생활 오래 하다 보니 나태해졌는데 만화를 보고 반성 많이 했다”는 등의 희망찬 반응이 상당수다.
취업한 지 8년째인 채모(32)씨는 회사에서 부속품이 되지 않는 것이 목표다. 채씨는 “자리(승진)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직장에서 필요한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며 “내가 회사를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나를 아쉬워하는 상황이 되도록 열심히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IT 벤처기업에 다니고 있는 정모(29)씨는 최근 여자친구와 콘서트를 보면서 직장생활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티켓 2장에 20만원을 주고 간 공연에서 여자친구가 정말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뿌듯함을 느낀 것. 정씨는 “행복해하는 여자친구를 보고 ‘이런 맛에 돈을 버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입사 이후 처음으로 했다”며 “결혼하면 뿌듯함에 책임감까지 더해질 테니 힘들어도 더 악착같이 일할 것”이라며 의지를 다졌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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