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밸런타인데이 분위기로 들떴던 코펜하겐은 갑작스레 핏빛으로 물든 공포의 도시로 변했다. 14일(현지시간) 오후 4시쯤 평온한 도심 주택가에서 수십발의 총성이 울리면서다. 카페를 겸한 크루트퇸덴 문화센터에서는 ‘표현의 자유’ 토론회가 열려 이슬람 풍자 예술가 라르스 빌크스 등이 참석 중이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괴한은 건물 바깥에서 자동소총으로 40여발을 난사한 뒤 달아났다. 카페 바 뒤로 피해 목숨을 건진 한 참석자는 “영화에나 나올 법한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났다”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행사를 주관한 헬레 메레테 브릭스는 “경비원이 ‘모두 밖으로 피해’라고 외치며 우리를 방에서 몰아냈다”며 “빌크스와 서로 손을 꼭 잡은 채 냉장창고에 숨어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용의자가 타고 도주한 폴크스바겐 차량을 뒤쫓는 한편 시내 주요 지역을 봉쇄하고 주민들에게 외출 자제를 당부했다. 그러나 자정을 넘긴 시각, 문화센터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시너고그(유대교 회당)에서 두 번째 총격이 일어나 이곳 출입통제를 담당하던 유대인 1명이 머리에 총을 맞아 숨졌다. 당시 회당 안에서는 북유럽유대안전협회 주관으로 유대교 성인식(바르 미츠바)이 진행되고 있었다.
◆덴마크가 테러 표적 된 이유는
이번 연쇄 총격사건은 각각 이슬람 풍자 작가와 유대인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의한 테러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범행 자체가 지난달 발생한 샤를리 에브도 테러와 꼭 닮았다. 당시 프랑스 테러범들은 만평가들을 살해한 뒤 유대인 식료품점에서 인질극을 벌이며 손님들을 살해했다.
덴마크는 또 대IS 국제연합전선에 전투기를 파견하는 등 북유럽 국가 중 가장 적극적으로 작전에 참여해 극단주의 세력을 자극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05년에는 덴마크 언론 ‘율란츠 포스텐’이 무함마드를 테러리스트로 묘사한 만평을 게재한 뒤 중동 각지의 덴마크 대사관이 무슬림들에게 습격당한 일도 있었다.
헬레 토르닝슈미트 덴마크 총리는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정치적 동기가 뒷받침된 행위임이 확실하다”며 이 사건을 ‘테러 공격’으로 규정했다.
이번 사건으로 유럽 내 급진화된 무슬림에 대한 두려움이 다시 일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이날 독일 니더작센주 브라운슈바이히에서는 매년 25만명이 참가하는 야외 카니발이 예정돼 있었으나 “이슬람 배후의 공격이 있을 수 있다”는 구체적 첩보가 입수됨에 따라 행사 직전 취소됐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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