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패권주의에 편승한 일 제국주의 기로에 일본 방위청이 그제 발표한 방위백서에 독도를 11년째 일본영토로 표시하고, 독도영공을 일본의 영공으로 표시하는 등 한국 측의 양국 외교관계 개선 노력에 또다시 찬물을 끼얹었다. 일본의 군국주의 행보는 지난 4월 아베 신조 총리의 6박7일 미국방문을 통해 강화된 후 조금도 후퇴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베 총리는 태평양전쟁의 전범이었던 외할아버지 기스 노부스케의 정치적 유훈을 이은 우익정치인이다.
일본 군국주의 부활이 아베노믹스로 통하는 일본경제의 활로를 찾고 국력을 결집시키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아베정권이 혹시라도 대동아공영권의 망령을 꿈꿀 정도로 취약한 것인가? 그렇다면 일본의 불행을 넘어서 아시아의 불행이다. 일본이 아무리 국력과 국방에서 앞서 있다고 분석했을지라도 오늘의 중국과 한국이 20세기 초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것과는 천양지차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고자 아베정권의 사기를 올려주고 있다. 일본은 미국의 주구노릇을 하면서도 자신들의 실속을 챙기는 위험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미·일관계가 구한말 카스라·태프트조약을 맺을 때처럼 ‘버락·신조 밀월(蜜月)’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일의 격상된 동맹관계 선언은 서구문명의 황혼기에 일어난, 미국 패권을 연장하려는 음모적 성격이 강하다. 미국은 이상하게도 일본이 오판할 수 있는 친일본정책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이에 우리 정부의 현명한 대처가 요구된다.
일본이 한국을 얕보는 이유는 한국의 사정에 정통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 큰소리를 치지만 일본에게 금융자본·과학기초기술 종속과 식민사학에 따른 역사 종속을 당하고 있으며, 사사건건 당쟁과 내분으로 국익을 놓치고 있는 정치후진성 등 여러 면에서 약점을 노출하고 있다. 한국의 통일과정 혹은 유사시에 미국의 개입에 편승해서 다시 정한론을 꿈꾸는 것이 일본 우익의 전략이다. 독도 분쟁은 일종의 빌미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의 국제정세를 보면 유럽의 독일·그리스·프랑스의 관계가 동아시아의 일본·한국·중국과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세계 패권국가로서의 미국의 독립변수가 있지만 미국의 일본 지지는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미국과 일본의 동맹강화는 인류문명에도 어둠을 드리우고 있다.
서양철학자 헤겔은 고대 인류문명의 ‘동방의 빛’에 대해 근대 서구문명의 역사발전과 패권을 ‘황혼의 빛’에 비유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황혼은 이상하게도 서구문명의 몰락을 풍자하고 있다. 그것의 내용 중에 파시즘이 들어 있다. 독일과 일본의 파시즘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그 희생양이 한국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고대문명의 세례를 그리스가 독일에 주었고 한국이 일본에 준 점을 생각하면 보은이 아니라 배반이지만 역사는 항상 현재 국력의 편이었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
일본은 19·20세기에 탈아입구(脫亞入歐)를 통해 서양국가의 일원이 되었으며, 아시아 국가로는 유일하게 제국주의에 성공하여 대동아경영권을 구가하려다가 태평양전쟁에서 패함으로써 전범국이 되었다. 아시아태평양 시대를 앞두고 탈구입아(脫歐入亞)를 해야 할 일본은 아시아 여러 국가들에게 확실한 사과를 하지 않음으로써 배척되었다.
일본문화는 세계적으로도 여성을 가학하는 사디즘 문화로 정평이 나 있다. 이는 일본 군국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군국주의는 여성을 대하는 일본인의 심리가 다른 민족, 특히 한국과 중국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일본의 사디즘 문화는 여성시대의 물결을 맞아서 일본 남성들이 퇴직할 즈음 ‘황혼이혼’을 당하는 것으로 나타난 적이 있다. 일본문명은 세계로부터 황혼이혼을 당하느냐, 평화헌법 고수냐의 기로에 서 있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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