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공태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단장이 지난 11월27일 도쿄 미나토구 한국중앙회관에 있는 집무실에서 한·일 관계가 재일교포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아직 한·일 관계가 좋아졌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정상회담 전과 후의 긴장감은 확실히 다르다. 우리 교민뿐 아니라 일본 정치인들도 두 나라 사이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50만명이 넘는 재일교포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단체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의 오공태 단장은 최근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한·일 정상이 서울에서 만난 지 한 달이 채 안 된 11월27일 도쿄 미나토구 한국중앙회관에 있는 집무실에서 오 단장을 만나 한·일 양국 관계가 재일교포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직 없지만 전환점이 마련된 만큼 양국 관계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은 분명히 강해졌다. 하지만 결국 산케이신문 기자 기소 문제와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해결돼야 모든 걸림돌이 제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 법원의 판결(12월17일 예정)이 일본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재일교포 사회는 한·일 양국 관계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은데.
“한류 열풍이 있을 때는 분위기가 좋았다. 반면 헤이트 스피치가 한창일 때는 너무 힘들었다. 그들이 시위를 마치고 나서 한국 가게마다 들어가서 ‘조선인 모두 죽여라’ 같은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도쿄 신오쿠보와 오사카 쓰루하시 같은 한인 밀집 지역의 피해가 막대했다.”
-민단 차원에서 어떻게 대응했나.
“무엇보다 헤이트 스피치 근절에 힘을 쏟았다. 100% 사라졌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 지난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의 일본 심사가 끝나고 난 뒤 민단은 별도 기자회견을 열어 헤이트 스피치를 법률로 금지하라고 요구했다. 일본에서는 민단 지방 본부와 지부를 중심으로 각 지방 의회에 혐오 시위 규제 법률의 필요성을 집중적으로 호소했다.”
일본 최대 야당인 민주당은 지난 5월 ‘인종 등을 이유로 하는 차별 철폐를 위한 시책 추진에 관한 법률안’을 참의원에 제출했으나 집권 자민당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며 소극적 입장을 보여 표결이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에는 한국 국적자가 50만명 정도, 북한 국적자가 3만5000명 정도로 추정된다. 50만명 중 10만명은 주재원이나 유학생 등 단기 체류자이고, 40만명이 일본에서 계속 생활하는 교포다. 영주권자 중에는 1980년대 이후 일본으로 건너온 ‘뉴커머’도 있는데 이들과 기존 교포의 통합을 위해서도 언어 문제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 교포 2세와 3세 중에는 한국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말과 문화를 가르치고 싶어도 학교가 일본 전역에 4개뿐이라 대부분 일본 학교만 다니다 졸업하게 된다. 민단과 요코하마 총영사관이 가나가와현에 한국학교를 세우는 방안을 추진 중이며 최근 교포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도 했다. 이게 잘 되면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시작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저출산 영향으로 최근 일본에서 폐교가 나오고 있는데 그 시설을 빌려서 운영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일본 내 북한의 지시를 받는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가 운영하는 학교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나.
“일본 전역에 조선학교가 60여개 있는데 교육 내용 등 때문에 일본 사회에서 많은 압박을 받고 있다. 북한 교육을 하면 안 된다는 내부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북한의 3대 세습에 반감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아 그대로 놔두면 조총련 안에서 민주화가 진행돼 학교도 변할 것으로 본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국 시민단체 등이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것은 민주화를 방해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지금은 공식적인 교류가 끊겼다. 2006년 5월17일 하병옥 당시 민단 단장이 조총련을 찾아가 서만술 당시 조총련 의장을 만나 두 단체의 화해를 공동으로 표명한 적이 있다. 당시 조총련이 탈북자 지원사업 등의 중단을 요구한 것에 대해 민단 내부에서 큰 반발이 있었고, 결국 하 단장의 사퇴와 제명으로 이어졌다. 이후 교류가 없다.”
-최근 롯데그룹의 경영권 승계 문제가 한국에서 큰 관심을 끌었는데 재일교포들의 반응은 어땠나.
“지난 10월2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한일친선협회, 일한친선협회, 민단이 공동 주최한 ‘한일 친선 우호의 모임’ 행사가 상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일 양국에서 1200여명이 참석하기로 해 애초 큰 연회장이 있는 다른 호텔에서 행사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롯데 문제가 불거졌고, 재일교포 사회에서 ‘롯데를 도와야 한다’는 얘기가 나와서 롯데호텔로 장소를 바꿨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두 아들이 한국말을 할 줄 아느냐, 어느 나라 기업이냐가 논란이 되는 것을 보고 착잡했다. 한국말을 못하는 재일교포는 한국인이 아니라는 말인가. 그냥 재일교포 기업이다. 재일교포들은 롯데가 열심히 사업해서 지금처럼 큰 기업이 됐다며 자랑스러워한다.”
“등록은 인터넷이나 우편으로도 할 수 있어 쉬운 편이다. 그런데 투표는 영사관에 직접 가서 해야 한다. 오키나와에 사는 사람은 후쿠오카 영사관까지 가야 투표할 수 있는데 교통 비용만 해도 부담이 된다. 대통령은 한국의 얼굴이니까 관심이 많지만 국회의원이나 정당 이름은 교포들이 잘 몰라 관심도 상대적으로 덜하다.”
-최근 한국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시끄러운데.
“정치적인 문제는 얘기할 수 없다. 발을 들이는 순간 민단이 분열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부탁하고 싶은 것은 있다. 6·25전쟁이 터지자 일본에 거주하던 청년과 학생 642명이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한 사실이 역사교과서에 실렸으면 좋겠다. 이들 중 135명이 인천상륙작전 등에서 목숨을 잃었다. 제3차 중동전쟁 당시 세계 각지에서 이스라엘인들이 참전한 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재일학도의용군 참전이 그보다 17년이나 앞선 재외국민 참전이다. 이런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게 아쉽다.”
-얼마 안 있으면 새해가 된다. 내년 가장 큰 목표를 소개한다면.
“내년이 민단 창단 70주년을 맞는 해다. 한국과 일본에서 기념행사를 통해 단원들의 단합을 도모하려고 한다. 전시회 등을 통해 민단의 역사나 현재 상황 같은 것을 일반 시민도 잘 알 수 있도록 소개하고 싶다. 또 차세대 육성사업의 상징인 ‘재일동포 어린이 잼버리’ 행사를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 500명을 한국에 데려갈 계획이다. 이들에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일본 나가노현 이나시 출생(1946년)
●메이지대 이공학부
●민단 나가노현 스와지부 문교과장
●민단 청년회 나가노현 본부 회장
●민단 나가노한국청년상공회 회장
●민단 나가노현 본부 단장
●민단 중앙 본부 부단장
●도쿄한국학교 이사장
●민단 중앙본부 단장
글·사진=우상규 도쿄 특파원 skw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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